남자 개인도로 경기에 나간 장경구가 결국 해냈다. 9월 28일, 송도 사이클 도로경기 특설코스에서 열린 남자 개인도로 경기에서 우리나라의 장경구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경구의 금메달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아시안게임 개인도로경기에서 획득한 첫 금메달이다.
9월 28일 오전 10시,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개인도로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초중반, 산발적인 브레이크어웨이
오전 10시부터 실시된 남자 개인도로경기는 전날 독주경기가 있었던 14㎞의 코스를 13바퀴, 총 182㎞ 달리는 경기였다. 첫 주회부터 경기대열에는 브레이크어웨이가 있었고 일시적으로 30여초 차까지 메인그룹과 벌어졌었지만 2주회에 들어서기 전에 이내 펠러톤에 제압당했다.
하지만 2주회에 들어서는 펠러톤에서 다시 산발적인 브레이크어웨이가 있었는데 이 때 우리나라의 장경구가 합세했다. 브레이크어웨이에 성공한 선두그룹은 4주회에 들어서기 전까지 펠러톤과 2분여 차이를 벌렸다.
이 쯤 홍콩의 청 킹록이 선두그룹을 추격했으나 펠러톤에서 협력하기 위해 나오는 선수는 없었다. 청 킹록은 5주회가 들어서기 전까지 선두그룹과 1분 간격까지 격차를 줄였었지만 추격은 역부족이었다.
첫 바퀴부터 브레이크어웨이를 시도하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모두 제압되고 1주회를 한 그룹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펠러톤에서는 언제든 뛰쳐나가려는 조짐이 계속 됐다.
2주회에서 일어난 브레이크어웨이에 장경구(왼쪽 2번째)가 합세해 3주회를 마칠 때 쯤에는 펠러톤과 2분여 차이를 벌렸다.
장경구가 포함된 선두그룹은 초반 15명이었으나 이후 14명으로 정리되어 안정세를 유지했다.
청 킹록이 주섬주섬 메인그룹에 합류하자 메인그룹의 속도는 현격히 줄었다. 8~9주회에 이르러서는 선두와 펠러톤이 4분이상 차이가 벌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져갔다. 선두에는 장경구가 있었고, 펠러톤에는 박성백이 있었다.
이 와중에 선두그룹 결승기점을 돌아올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했고, 그 때 마다 연출된 것 같은 브레이크어웨이가 몇 차례 시도됐다. 그러나 8주회 쯤 선수 1~2명의 뒤로 처지다가 정리되는 상황이 있었을 뿐 선두는 이후 14명으로 안정세를 유지했으며 한동안 경기변화 없이 펠러톤과 시간차만 계속 벌렸다.
한편, 메인그룹은 추격의지를 잃었는지 선두와의 시간차는 계속 벌어졌다.
펠러톤에 있는 박성백은 선두그룹으로 장경구가 나간 이후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분하게 경기에 임했다.
절묘한 막판 뒤집기, 성공!
선두의 안정세는 결국 홍콩의 르엉 천 윙이 깼다. 11주회를 마치면서 르엉은 선두그룹으로부터 다시 브레이크어웨이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결승기점으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셔터 세례를 받기 위한 오버액션으로 보였지만 이내 그의 진심을 파악한 장경구가 추격을 시작했고 이어서 이란의 아르빈 모아자미 고달지와 선두그룹을 끌던 중국의 즈하오 징바오가 추격에 합세했다. 그리고 약 18분 뒤, 마지막주회에 들어서는 선두는 이란의 아르빈과 우리나라의 장경구로 정리되어 있었다. 2명을 추격하는 그룹은 40여초 뒤에 따르고 있었다. 추격그룹은 사실상 앞선 2명을 잡을 의지가 꺾였는지 점차 속도가 줄어드는 형편이다. 펠러톤은 그 추격그룹 보다도 5분가량 뒤에 달리고 있었고 그 뒤로도 4명의 후미그룹이 있었다.
선두그룹의 균형을 깬 것은 홍콩의 르엉 천 윙이었다.
르엉의 공격에 장경구가 바로 반응했고 이어 이란의 아르빈과 중국의 즈하오가 합세했다.
마지막 주회에 들어서는 선두는 장경구와 아르빈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장경구는 반바퀴를 남긴 시점에서 아르빈에게 30초 가량 뒤지기도 했지만 이내 회복해 결승 1㎞ 전방에서는 아르빈을 앞서게 됐다.
아르빈의 집요한 추격에 장경구가 잡힐 듯 보였으나 결승선을 200여 미터를 앞두고 장경구가 마지막 스퍼트를 시도하자 아르빈의 기세는 꺾였다.
반면, 장경구와 아르빈의 다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반 바퀴가 남은 상황에서 장경구는 아르빈으로부터 30초 가까이 뒤쳐졌었으나 이내 다시 추격에 성공해 결승전방 1㎞에서는 오히려 앞서게 됐다. 그러나 아르빈도 장경구를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결승전방 400m 두 선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결승선 주변의 관람객들은 환호를 질렀다. 장경구가 선두에 있었고 아르빈이 장경구를 곧 잡을 듯이 추격하고 있었다. 결승선을 200여 미터를 앞두고 장경구가 마지막 스퍼트를 시작했고 아르빈의 기세는 순간 꺾였다.
결승선 10여 미터 전에 우승을 직감했는지 장경구가 허리를 펴고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결승선에는 많은 사이클 팬들이 나와 장경구에게 환호를 보냈다.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장경구가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이내 허리를 펴고 환희에 벅찬 오열을 터뜨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개인도로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감동과 감격이 교차한 시상식, 경기 중계는 없어
장경구의 시상식은 장경구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었다. 사이클경기의 꽃이라고 할 만한 도로경기를 보기위해 많은 사이클 팬들이 찾아왔고 길가에서 그를 응원했다. 그들은 시상식에도 돌아가지 않고 장경구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장경구에게 금메달이 수여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장경구의 부모와 지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중에는 장경구의 소속 팀인 코레일 사이클 팀의 조건행 감독도 있었다. 조 감독은 장경구의 아버지를 얼싸안고 아무 말 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장경구의 어머니가 경기를 마친 아들을 찾아와 애틋하게 볼을 어루만지고 있다.
장경구의 어릴 적 스케이트 선생님은 가슴이 벅찬 나머지 장경구가 선수대기실로 돌아가자마자 호흡곤란으로 몸을 제대로 못 가룰 정도로 흥분하기도 했다.
선수대기실에서 페어플레이를 한 두 선수가 서로를 토닥이고 있었다. 이란의 아르빈과 장경구는 과거 UCI 훈련생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사이라고.
뒤늦게 경기를 마친 박성백은 선수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잘 했어. 내가 뭐랬어? 너 제대로 들어갈 거라고 했지. 마지막 스프린트 어땠냐? 너한테 안 되지? 이겼지?”하면서 제 일처럼 후배 장경구의 승리를 축하했다.
조 감독에게 장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대한 소감을 묻자 “(사이클 선수 또는 사이클경기가) 설움 받았던 게 너무나 많았고, 이 기쁨은 그렇기 때문에 더 큽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장경구가) 정말 해냈다는 게 감격스럽습니다. 장 선수가 (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28년 만에 금메달을 땄다는 결과가 이 송도의 면적보다, 이 바다보다 더 깊은 감격을 주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장경구의 소속 팀인 코레일 사이클 팀의 조건행 감독이 시상식장에서 장경구의 아버지를 만나 얼싸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 감독은 인천아시안게임 사이클경기 방송해설위원이기도 하다. 제자가 우승한 경기를 방송에서 어떻게 해설했냐고 했더니 “오늘 도로경기는 방송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이 너무 아쉽고요. 이런 것이 정책적인 면에서나 인식에서나 우리 사이클이 처해진 상황이라고 생각되어 안타깝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사이클의 저변이 더 확대되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말하고 애써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친구와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있어 기뻤다”
장경구가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포디엄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왼쪽부터 이란의 아르빈 모아지미 고달지, 장경구, 홍콩의 르엉 천 윙.
장경구는 기자회견에서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1바퀴 남기고 따라잡혀서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요. 그 후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도로경기를 지도해주신 최희동 감독님과 함께 힘든 훈련도 참아냈고 어렵게 벨기에 전지훈련까지 다녀오면서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정말 기쁩니다. 이번 계기로 더 큰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을 정리했다.
장경구의 가족과 친지는 물론, 많은 사이클 팬들이 시상식을 보면서 장경구에게 찬사를 보냈다.
결승선 직전에 이란선수와의 경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뭔가?
“이란의 아르빈 선수와는 런던올림픽을 대비해 훈련을 갔던 UCI 월드사이클센터에서부터 힘든 훈련을 함께 이겨내고 의지하던 사이고요. 지금은 평소 서로의 생일까지 챙길 정도로 친한 친구입니다. 마지막 스퍼트가 제게 항상 과제였어요. 스프린트를 오래하지 못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단점인데 최희동 감독님께서 그 단점을 고쳐주려고 많이 애를 쓰셨죠. 아르빈을 UCI에서 상대했을 때는 저보다 스프린트 실력이 좋았어요. 그런데 (최 감독님과) 열심히 훈련한 덕분인지 마지막 스퍼트 때 자신 있었습니다.”
송도에서는 이틀 연속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친구인 아르빈과 경기 전에 메시지를 주고받은 게 있나?
“며칠 전,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만약에 둘이 선두로 나서게 되면 좋은 경기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라는 말을 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정말 마지막까지 경쟁하게 됐네요. 어떻게 보면 아르빈이랑 함께 갈 수 있어서 더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후위 선수들과 더 격차를 벌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경구를 비롯한 메달리스트들은 시상식 후에도 팬들과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며 한 동한 시상식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광저우 이후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 특기는 스프린트가 아니에요. 그런데 사전에 공개된 인천아시안게임 코스는 다 평지이고, 그래서 출전선수 전원이 마지막에 스프린트 경쟁으로 순위를 정할 확률이 높았죠. 그래서 최희동 감독님과 스프린트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들을 했는데 어느 정도 실력을 끌어올리기까지 정말 힘들었고요. (무엇보다) 4년 동안 준비한다는 그 자체가 힘들었죠.”
장경구는 시상식 후 도로경기를 지도해준 국가대표 팀 최희동 감독을 포디움으로 끌어올려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스케이트선수를 한 것으로 안다. 사이클로 전향한 이후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애쓰고 힘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이클로 전향했을 때 다른 선수들보다 사이클 테크닉이나 조종기술 같은 게 떨어지는 것이 문제였죠. 더구나 가장 중요한 경기에 대한 경험이 없다보니까······. 해외 경기에 최대한 참가하려고 노력했고, UCI 훈련센터에서 훈련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올해 다녀온 벨기에 전지훈련도 좋은 경험이 됐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제 스프린트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희동 감독이 많이 애쓰셨죠.”
장경구는 부모님과 포디움에서 애틋한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도핑테스트 때문에 기자회견장에 늦게 나타난 아르빈은 “경기가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고 장경구와 같은 마지막 스퍼트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난 마지막에 스프린트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경구가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은메달에 머물게 됐다”고 말해 친구인 장경구를 추켜세웠다. 그에게는 또, 인간 장경구와 사이클 선수인 장경구에 대해 각각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UCI 훈련센터부터 동고동락한 내 친구다.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사이클 선수”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세 명의 선수들에게 공통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모두 올림픽 도전과 프로 팀에 발탁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장경구는 내년 시즌에 다시 벨기에로 떠나 그 곳에서 훈련과 경기출전을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9월 29일은 사이클 도로경기 마지막 날로 여자 개인도로경기가 펼쳐진다. 이번 대회 여자 도로독주 금메달리스트인 나아름이 다시 한 번 실력 발휘를 할 예정이며, 우리나라 여자선수 중 최초로 프로 팀인 오리카-AIS에 발탁됐던 구성은이 함께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