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과 엘리트 선수들 간의 교류를 넓히고 올해 2월, 훈련 중 유명을 달리한 故 염정환 선수를 기리는 대회인 ‘삼천리자전거 서킷 90’가 11월 8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개최됐다.
사이클 동호인, 엘리트 선수를 포함한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들의 교류와 올해 훈련 중 유명을 달리한 염정환 선수를 기리기 위한 대회인 서킷 90가 11월 8일,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금산인삼첼로, 대한지적공사, 서울시청, 양양군청, 연천군청, 인천시청, 의정부시청 등의 남녀 엘리트 선수들을 포함해 동호인과 갤러리 300여명이 모였다.
스포티즌이 주최하고 대한실업사이클연맹이 주관한 이 대회에는 동호인 200여명이 참가했으며, 국민체육진흥공단, 금산인삼첼로, 대한지적공사, 서울시청, 양양군청, 연천군청, 인천시청, 의정부시청 등의 남녀 엘리트와 고등부 선수 70여명이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4가지 경기부문으로 치러졌다. 남자 동호인 간의 경기인 C-90 R과 여자 동호인과 엘리트 선수가 함께 경기한 C-90 W, 남자 동호인과 엘리트 선수가 함께 경기한 C-120 R 그리고 1시간 동안 자신의 페이스로 달리되 50분 안에 8바퀴 이상 트랙을 돌아야 완주로 인정하는 C-90 U이다.
이른 아침부터 대한사이클연맹 심판진들이 출전번호 배부와 경기에 대한 안내를 도왔다.
양정택, C-90 R 우승 “매년 참가하고 싶어”
남자 동호인끼리의 경기인 C-90 R 출전자들이 경기 전 심판장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대회 첫 경기였던 C-90 R에서는 경기 후반까지 캐논데일레이싱 팀의 이어진(맨 왼쪽)이 주도적으로 선두를 이끌었다.
마지막 결승 스프린트에서 팀 JK의 양정택(맨 왼쪽)이 간발의 차이로 앞서며 우승을 거뒀다.
남자 동호인끼리 경기를 치른 C-90 R은 2.5㎞ 트랙을 12바퀴 달려야하는 경기였지만 대회진행 시간이 촉박해 10바퀴를 주행하는 경기로 치러졌다. 이 경기에서 캐논데일 레이싱 팀의 이어진이 주도적으로 선두그룹을 이끌었지만 마지막 결승 스퍼트에서선 팀 JK의 양정택이 승기를 잡으며 우승을 거뒀다.
양정택은 “참가한 대회 중 1등은 처음이다. 자동차 서킷에 와보는 것도 처음인데 노면상태가 고르고 도로가 넓어 안전해서 좋았다. 매년 참가하고 싶다”는 말로 우승소감을 대신했다.
경쟁적인 경기 외에도 1시간 동안 서킷을 자유롭게 주행하는 C-90 U 이벤트도 열렸다.
남궁소영, “동호인들 진지한 모습에 전력 다해”
여성동호인 30명이 성원되지 않으면 폐부될 것이라던 여성동호인(사진 아래)과 엘리트 선수(사진 위) 간의 경기인 C-90 W는 여성동호인들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실시됐다. 참가했던 여성동호인들은 힘든 경기였지만 폐부되지 않고 경기가 열려 기쁘다는 반응이었다.
여성동호인과 엘리트 선수의 경기인 C-90 W에는 여자 동호인 7명에 엘리트 선수 20여명이 출전했다. 엘리트 선수와의 경기가 부담스러운 여성동호인들은 수적 열세에 더욱 위축되어 보였다.
경기는 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다. 엘리트들이 300m 지점을 통과한 시점에 동호인들이 출발했는데 엘리트들에게는 1바퀴 핸디캡이 주어졌기 때문에 경기 시작과 함께 동호인들은 선두그룹으로 간주됐다. 엘리트들이 순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선두그룹인 동호인들을 따라잡고 결승선을 통과해야 했다.
경기 초반 엘리트 그룹에서 연천군청의 이주미 등이 주축이 되어 동호인 그룹에 대한 추적조가 형성됐다. 경기 종반, 추적조는 선두인 동호인 그룹에 합류했고 경기의 주도권은 엘리트들에게 넘어갔다. 여성동호인 그룹은 합류 후 엘리트 선수와 함께 그룹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이내 서울시청 남궁소영과 강현경이 브레이크어웨이를 성공해, 결국 남궁소영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며 우승을 안았다.
경기 후반, 엘리트 그룹의 선두가 동호인 선수들을 따라잡자, 엘파마 탑스피드의 최소연(맨 오른쪽)은 엘리트 선수들의 후미를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출중한 경기력을 보였다.
남궁소영은 “동호인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자전거를 즐기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서 긴장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재밌겠다’했는데 나중에는 동호인 선수들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는 걸 보고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탔다. 동호인들이 경기에 몰입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자극되고 반성하게 되는 면도 있다.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엘리트와 동호인 서로 더 많은 교류가 있어서 서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경기 후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청의 남궁소영(왼쪽)과 강현경이 막판 브레이크어웨이에 성공해 각각 1, 2위로 골인했다.
동호인 중에서는 최소연(엘파마 탑스피드)이 경기후반까지 엘리트 그룹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출중한 실력을 보였다. 최소연은 “처음에 여성부가 30명이 성원되지 않으면 경기가 폐부되고 여자 엘리트들도 출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참가자가 적었음에도 여성부 경기가 열리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들의 인원이 많고 동호인은 7명밖에 안되니까 경기는 힘들었다. 경기후반 엘리트와 같은 그룹일 때는 엘리트 선수들에게 진로가 막혀서 막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라이딩 할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워낙 동호인 여자선수들이 별도 없다 보니, 엘리트 여자선수들과 무리를 지어 함께 경기를 하는데 흥분되고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할 때는 인원이나 실력적인 면을 좀 더 감안해 형평성을 맞춰야 할 것 같다”고 경기 직후, 소감을 말했다.
시상대에 올랐던 남궁소영 등 엘리트 선수들은 “여성동호인들이 레이스를 진지하게 즐기는 것에 감명 받아 진심으로 경기에 임하게 됐다”고 말하고 “동호인과 엘리트 선수들이 함께 레이스하는 자리가 자주 마련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성백, “동호인들 기량에 놀랐다”
서킷 90의 하이라이트 C-120에는 투르 드 코리아 2회 종합우승을 한 박성백, 2014 코리아 내셔널 챔피언인 서준용, 지난 전국체전 타임트라이얼 챔피언인 최형민 그리고 사이클스타 형제인 장선재, 장찬재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이클 스타들이 대거 참가했다.
여자부 경기에 이어 곧바로 남자 동호인과 엘리트 선수가 출전하는 C-120 R경기가 진행됐다. C-120 R은 트랙을 총 16바퀴 달려야하는 경기다. 출발 전 사회자가 몇몇 선수에게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인터뷰했는데 대한지적공사 장선재는 “진짜 시합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으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박성백은 “사고 없이 잘 마쳤으면 한다. 1바퀴 핸디캡이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동호인 진영은 세븐힐즈의 이형모, 캐논데일 레이싱의 란 데릭, 용산트렉레이싱의 천소산 등과 고등부 선수 일부가 주도해 선두그룹을 이끌었다. 이들은 경기 중반, 엘리트 선두보다 랩타입에서 앞서기도 했으며 엘리트 그룹의 후미를 따라잡아 컷오프의 아픔을 선사하기도 했다.
C-120 R 경기도 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동호인 선수들이 출발했다. 고등부 사이클부 선수들도 이 경기에 초청받았는데 동호인들과 한 그룹으로 경기에 참가했다. 경기는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중반까지 동호인 그룹과 엘리트 그룹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경기 중반, 자연스럽게 그룹이 분화되면서 엘리트 그룹은 국민체육진흥공단 박성백, 서준용, 대한지적공사 장선재, 양양군청 장찬재, 금산인삼첼로 최형민 등이 주축이 되어 선두그룹을 형성했고 동호인 그룹은 고등부 선수들과 하이바이크 세븐힐즈의 이형모, 용산트렉레이싱의 천소산, 캐논데일 레이싱의 란 데릭 등이 선두그룹을 이끌었다.
엘리트 선두는 박성백, 장선재, 장찬재, 최형민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끌었다.
골인을 1바퀴 남긴 상황에서 동호인 선두그룹을 따라잡은 엘리트의 선두가 결승주회를 착각해 그대로 라스트 스퍼트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해프닝에서 박성백이 1위로 골인(?)해 관람하던 갤러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경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동호인과 엘리트의 선두그룹에게 각 진영의 후미가 잡히는 양상으로 바뀌어 갔다. 결승전 4바퀴를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두 진영의 줄다리기는 엘리트에게로 기울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엘리트 선두는 동호인 선두 그룹을 따라잡았다. 이 과정에서 박성백, 장선재, 최형민 등이 결승주회로 착각한 나머지 라스트 스프린트 경쟁을 벌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해프닝에서 박성백은 허리를 펴고 우승 세리머니까지 하다가 오히려 동호인 선수들에게 역공을 당했는데 어렵게 다시 페이스를 찾아 결국 나머지 한 바퀴를 다시 돌아 1위로 골인했다.
결승 주회를 착각했던 박성백은 역공을 당해 위기를 맞았지만 나머지 1바퀴를 돌아서도 다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제대로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다. 갤러리들은 큰 웃음을 선사한 박성백에게 큰 박수로 화답했다.
경기 후, 박성백은 “다른 어느 대회보다 재밌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힘들게 경기했다. 출발 전에는 경기를 쉽게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된 판단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동호인 선수들 실력에 놀랐다. 중반까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니 같은 그룹의 선수들끼리도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아니다. 계속 유지해야 한다’하고 판단이 엇갈렸다. 결국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후반에 동호인 진영이 조금 주춤하면서 겨우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 오죽하면 동호인들을 따라잡은 직후 결승인 줄 알고 라스트스퍼트를 했겠는가. 동료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 다시 페이스를 찾아주었기 때문에 경기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동호인들의 실력을 격찬하고 동료 선수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스포츠정신 순수하게 지켜야 지속될 수 있어
이번 서킷 90에 참가한 동호인들은 “언론이나 SNS에서 보던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를 즐기게 되어 기쁘다”고 반가운 목소리를 내는 한편, 대회 준비가 허술하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또한 레이스를 하는 경기대회에서 있어선 안 될 일도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인 최초 미대륙횡단경기 솔로부문 완주와 ‘기부라이딩’으로 잘 알려진 이형모 씨는 “동호인들은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이지 승부에만 집착하는 집단이 아니다. 좋은 의미의 대회인데 일부 생각이 짧은 사람들 때문에 대회가 퇴색되어 버렸다”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이형모 씨(오른쪽)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서킷90이 일부 생각이 짧은 사람들 때문에 빛이 바랬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나 “엘리트와 고등부 선수들은 열심히 레이스에 임해 주었으며 이들에게 잘못된 화살이 돌아가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이 씨의 주장은 동호인 선두그룹이 랩타임을 기준으로, 한 때 엘리트 선두를 앞서는 시점이 있었는데 신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동호인 그룹을 주도하고 있던 고등부 선수에게 리딩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동호인들이 분노하는 본질은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누군가가 망쳤다’는 가능성이 아니다. 정정당당해야 하는 레이스에 외력이 가해지는 불쾌한 장면을 목격한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와 관련해 순수하게 경기에 집중한 고등부 선수들과 엘리트 선수들에게 잘못된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염려하는 심정도 밝혔다.
이밖에 문제점은 또 있었다. 여자부 경기인 C-90 W에는 남자 동호인선수가 끼어 함께 경기를 치렀다. 남자 선수는 수적 열세인 여성동호인들과 함께 경기한 것이 아니라 여자 엘리트 그룹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여럿이 치루는 레이스를 개인적인 유희를 위해 양해해도 되는가”, “남자가 여자 엘리트와 함께 레이스를 진행하면 상대적으로 여성동호인이 더 불리하지 않나”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시시비비 거리가 나오는 것은 이번 대회에 약속되지 않은 예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레이스는 예외를 허용한다. UCI 프로팀 선수라도 동호인이 출전하는 작은 지역대회에 1년에 단 한번은 출전해도 된다는 UCI 규정이 있으며, 주최자가 지역적인 여건이나 기후 등의 조건에 따라 공인된 규정보다 우선하는 ‘대회특별규정’을 기술하기도 한다. 또한, 출전자의 안전과 순위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회당일 심판위원회의 직권으로 경기중단, 축소, 엔트리의 변경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경기대회에서의 예외다.
그러나 이번 서킷 90에서 일어난 예외는 위에 언급한 어떤 사전 약속과 통용에도 속하지 않는 조치다. 이런 점들이 아름답고 유쾌해야 하는 대회에 불신을 낳았다.
주최사, “따끔한 목소리 겸허히 받아들여 정례대회 만들 터”
총 10명을 시상하는 C-120 R의 시상식. 1위를 한 박성백을 비롯한 C-90 W에서 수상한 남궁소영 등 엘리트 선수들은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고 염정환 선수의 유족에게 써달라고 기부했다.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음에도 서킷 90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C-90 W에서 수상한 남궁소영과 강현경, 이효진 그리고 C-120 R에서 수상한 박성백, 신동인(대한지적공사), 민경호(서울체고) 등은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故 염정환 선수의 유가족에게 전달해 달라며 기부했다. 또한, 현장에서 진행한 자선경매에서는 염정환이 생전에 사용했던 프레임이 13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故 염정환 선수가 생전에 사용하던 프레임이 자선 경매에서 130만원에 낙찰되어 엘리트 선수들의 기부금과 함께 유가족을 위해 쓰이게 됐다.
대한실업사이클연맹 김석호 전무이사가 엘리트 선수들의 기부금을 국민체육공단 이병일 감독(왼쪽)에게 전달했다. 이 감독은 염정환 선수의 유가족에게 이 성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주최사인 스포티즌은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했던 걸 안다. 동호인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차기 대회에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대회를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대한실업사이클연맹에 의뢰해 동호인들과 엘리트 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정례대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를 위해서 차기 대회에 구성될 이벤트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하고 고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 삼천리자전거 서킷 90 사진 갤러리
■ 서킷 90 공식 홈페이지 www.circuit90.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