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즈는 광범위한 산악자전거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블자전거와 하드테일을 제외하고, 27.5인치 휠을 쓰는 풀 서스펜션 3종, 29인치 7종 그리고 앞바퀴에는 29인치를 뒤에는 27.5인치를 쓴 MX 세팅 2종까지 총 12가지 풀 서스펜션 MTB가 존재한다. 다운힐 머신인 V10의 경우 29인치와 27.5인치 그리고 MX까지 3가지 버전으로 준비된다. 이처럼 장르와 라이딩 스타일에 맞춰서 세밀하게 모델을 구분하고 휠 세팅 옵션을 둔 덕분에 라이더는 마치 커스텀 자전거를 주문하듯 자신의 취향에 맞는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
산타크루즈는 다양한 풀 서스펜션 자전거 라인업에 E-MTB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첫 모델은 헤클러다. 헤클러는 산타크루즈 설립 초기부터 오랜 기간 생산된 싱글 피봇 방식의 풀 서스펜션 자전거였는데, VPP 서스펜션 시스템을 쓴 브론슨을 기반으로 한 E-MTB로 다시 태어난 것. 헤클러는 27.5인치 모델과 MX 세팅 두 가지로 공급되며, 좁고 테크니컬한 싱글트랙을 빠르게 달려나가는 공격적인 라이딩 스타일에 어울린다. 트래블은 27.5인치 모델이 앞 160㎜ 뒤 150㎜이고, MX 버전은 앞뒤 140㎜로 짧아진다. 무거운 E-MTB지만, 오랜 기간 산타크루즈의 자전거를 탄 라이더도 만족시키는 민첩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헤클러는 시마노 E8000 모터를 달고 출시되었지만, 이후 시마노가 E8000의 후속모델인 EP8 모터를 공개하자 토크가 향상된 EP8 모터로 업그레이드됐다.
헤클러로 E-MTB 시장 진출을 알린 산타크루즈가 두 번째로 공개한 모델은 블릿(Bullit)이다. 블릿 역시 헤클러와 마찬가지로 싱글 피봇을 쓴 풀 서스펜션 자전거였고,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총 2세대 모델이 판매됐다. 단종된 싱글 피봇 방식의 풀 서스펜션 자전거의 이름을 E-MTB로 부활시키는 모습에서, 산타크루즈가 더 이상 싱글 피봇을 생산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98년부터 사용된 블릿이라는 이름이 국내에서는 상표권 문제로 ‘헤클러 LT’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오랜 산타크루즈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헤클러 LT는 27.5인치와 MX 두 가지 버전이 있는 헤클러와 달리 MX 버전으로만 판매된다. 앞는 돌파력이 좋고 부드러운 주행감을 선사하는 29인치 휠을 달았고, 뒤에는 빠른 반응 덕분에 좁은 싱글트랙에서도 뒷바퀴가 잘 따라오는 27.5인치를 썼다. 29인치 휠 고유의 스피드와 돌파력 그리고 27.5인치의 재미와 민첩함을 잘 버무린 것. 27.5인치 뒷바퀴는 극한 경사면에서 라이더의 엉덩이가 타이어에 닿는 현상을 줄여주고, 신장이 작은 라이더도 무리 없이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X 세팅 시에는 앞 허브의 높이보다 뒤 허브의 높이가 낮아지기 때문에, 라이더가 뒷바퀴 쪽으로 체중을 실어서 앞바퀴를 들어올리기 쉽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라이딩 테크닉을 발휘할 수 있고, 바위나 나무뿌리 등을 넘어갈 때도 유리해진다. 헤클러 LT의 트래블은 앞뒤 모두 170㎜로, 헤클러 MX 버전보다 앞 10㎜ 뒤 20㎜가 길다.
헤클러가 브론슨과 비슷한 성격이라면, 헤클러 LT는 노매드와 비교할 수 있다. 앞뒤 트래블이 같고, 다운힐 머신인 V10에서 가져온 저중심 VPP 서스펜션 시스템도 비슷하다. 가까운 싱글트랙부터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바이크파크의 트레일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까지 빼닮았다.
헤클러 LT는 헤클러보다 더 긴 트래블을 지닌 만큼 프레임의 디자인과 지오메트리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긴 포크 때문에 핸들바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짧은 헤드튜브를 썼다. 프레임 사이즈에 따라서 다르지만 헤클러보다 평균 20㎜가 짧다. 헤드튜브의 각도는 헤클러보다 조금 더 누운 64도이며, 시트튜브의 각도는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77도 부근이다. 리치는 헤클러보다 20㎜ 가량 길어졌으며, 스택은 헤클러 LT가 조금 길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BB 중심부터 앞 허브까지의 거리인 프론트 센터(818.8㎜, L 사이즈 기준)는 헤클러에 비해서 3.65% 길어졌고, 뒤 허브 중심까지의 거리인 리어 센터는 449㎜로 4㎜, 약 0.9%가 길어졌다. 휠베이스는 헤클러 LT(블릿)가 같은 MX 버전인 헤클러보다 30㎜ 가량 길다.
산타크루즈의 카본 프레임은 C와 CC 두 가지 등급이 있다. 두 프레임 간 강성의 차이는 없는 대신, 고가의 카본이 사용된 CC 프레임 더 가볍다. CC에 쓰인 고강성, 고장력 카본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강성과 강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클러 LT는 헤클러와 마찬가지로 카본 C 모델 없이 CC 카본으로만 프레임을 만들었다. 스윙암도 CC 카본이며, 다운튜브 아래를 덮는 배터리 커버도 카본 소재다.
전동 유닛은 시마노의 EP8을 사용했다. 산타크루즈는 첫 E-MTB였던 헤클러에 E8000을 사용하다가, 시마노가 새로운 유닛인 EP8을 선보임과 동시에 모터를 업그레이드했다. 헤클러 LT는 처음부터 시마노 EP8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E8000 유닛에 비해서 무게가 300g이 가볍고 토크는 85Nm으로 20% 향상됐다. 경향화의 비결은 프레임과 모터를 연결하는 마운트를 마그네슘으로 바꾸고 부피를 10% 줄인 데 있다. Q팩터는 E8000과 같은 177㎜이며, 크랭크 암은 160㎜부터 시작된다.
다운튜브 안에 내장된 배터리는 504Wh에서 630Wh로 용량이 25% 증가했다. 모터의 토크 향상과 배터리 용량 증가 외에도, EP8은 여러 부분에서 E8000을 개량했는데, 낮아진 구름저항과 기계식 변속기에서도 완벽하게 지원되는 주행 보조 시스템, 향상된 열 관리 능력 등이다.
헤클러 LT는 구성 부품에 따라서 S 킷과 XT 킷 그리고 X01 킷 3가지 모델로 공급된다. 1300만원인 S 킷은 카본 CC 프레임에 폭스 38 플롯 퍼포먼스 170㎜ 포크와 략샥 수퍼디룩스 셀렉트+ 리어쇽, 스램 GX 이글 12단 구동계를 사용했다. 브레이크는 스램 코드 R이고, 산타크루즈 e35 카본 핸들바를 썼다. DT스위스 370 허브에 레이스페이스 ARC HD 30 림을 앞뒤로 사용했으며, 앞 타이어는 맥시스 아세가이 29×2.5 뒤 타이어는 맥시스 미니언 DHR Ⅱ27.5×2.4다. 시승차는 헤클러 LT CC S 킷에서 스램 GX 이글 AXS 무선 디레일러와 락샥 리버브 AXS 무선 드로퍼 포스트로 업그레이드했다.
XT 킷 모델은 구동계에 시마노 XT 12단을 사용한 모델이다. 폭스 38 플롯 퍼포먼스 엘리트 170㎜ 포크와 략샥 수퍼디룩스 셀렉트+ 리어쇽을 썼고, 휠셋은 DT스위스 350 허브에 레이스페이스 ARC HD 림 조합이다. 가격은 1430만원이다.
X01 킷은 폭스 38 플롯 팩토리 포크와 락샥 수퍼디룩스 코일 얼티밋 리어쇽이 쓰인다. 에어쇽을 쓴 S, XT 킷과는 달리 리어쇽에 코일 스프링을 사용했다. 구동계는 스램 X01 이글 12단이고, DT스위스 350 허브에 산타크루즈 리저브 30 카본 림을 사용했다. 가격은 1650만원.
“모든 산을 다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정현섭(화정MTB)
강렬한 라벤더 색채 헤클러 LT를 2개월 간, 20여 회 라이딩했다. 앞마당처럼 익숙한 바이크파크부터 새로운 싱글트랙까지 산악자전거 그리고 E-MTB가 다녀야 마땅한 곳들을 누비는 동안, 다운힐과 엔듀로 레이스 등 산악자전거 레이스에서 쌓아온 산타크루즈의 명성과 자전거 성능이 E-MTB에도 그대로 이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승차는 L 사이즈였는데, 신장 180㎝인 내 몸에 착감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좋은 포지션을 만들어낸다. 리치 475㎜는 주행 포지션에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중앙에 실리도록 해주며, 64도로 누운 헤드튜브와 긴 휠베이스가 다운힐 속도를 증가시킨다. 77.1도로 바짝 일어선 시트튜브와 449㎜로 약간 긴 듯한 체인스테이는 시마노 EP8 모터의 강력한 힘 그리고 똑똑해진 프로그램과 만나 놀라운 주행성능을 보여준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고 테크니컬한 오르막 구간들을 너무나 쉽게 오른다. 불가능해 보였던 언덕을 하나 둘씩 정복할 때마다 E-MTB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앞 29인치, 뒤 27.5인치 혼합 휠 세팅은 뛰어난 주파력과 민첩함으로 싱글트랙 주행과 코너 탈출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 64도 헤드튜브와 긴 휠베이스는 고속 주행과 높은 안정감을 주는 대신 급한 코너에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27.5인치 휠이 상당 부분 상쇄시킨다. 특이하게도 뒷바퀴의 그립을 끝까지 끌어가는 능력이 있다. 뒤가 미끄러지면서 ‘아차!’ 하는 순간 어느새 그립을 회복하는 것이 헤클러 LT의 특별한 장점으로 느껴진다.
포크와 리어쇽의 브랜드가 달라서 감성적인 불편함이 있지만 주행을 해보면 불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산타크루즈가 튜닝한 서스펜션은 싱글트랙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치 다운힐 자전거에 버금가는 거침없는 내리막 성능을 보린다. 예고 없이 등장하는 나무뿌리, 바위 단차에서도 높은 안정감을 선사한다. 백미는 밸런스다. 무거운 E-MTB지만 뛰어난 밸런스 덕분에 점프가 아주 쉽고 착지 시 풍성한 느낌의 서스펜션이 안정감을 더해준다.
모든 산을 다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헤클러 LT와의 만남이었다.
■ 오디바이크 www.odbike.co.kr ☎(02)2045-7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