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신용윤
2016년 제품라인을 개편한 캐논데일은 로드바이크를 엘리트, 인듀어런스, 뉴로드, 사이클로크로스, 투어링까지 5개 카테고리로 정리했다. 이 중 뉴로드는 그래블바이크 슬레이트를 내놓으며 신설한 카테고리로 지난해 SE 컬렉션이 추가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됐다. 이번 기사에서 시승한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가 바로 이 뉴로드 바이크다.
마음 속 새로운 길을 찾아서
‘뉴로드’는 캐논데일의 다른 제품 갈래처럼 전통적인 레이스나 장르를 구분 짓는 말이 아니다. 이번 기사에서 시승한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를 캐논데일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으면, 인듀어런스와 뉴로드 두 카테고리에서 모두 나타난다.
뉴로드 라인업은 그래블바이크인 슬레이트와 SE 컬렉션으로 구성된 걸 알 수 있는데, 이번 시승 모델인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SE 컬렉션 중 하나다. 여기서 SE는 특설 모델(Specially Equipped models) 뜻하는 것으로, 별도의 장르나 갈래로 설정된 자전거들이 아니라 인듀어런스바이크인 시냅스와 사이클로크로스바이크인 캐드X(CAADX), 수퍼X를 다양한 노면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부품구성을 강화한 모델이다. 이밖에 여행용 자전거인 투어링도 이 컬렉션에 포함됐다.
시냅스와 시냅스 SE, 무엇이 다른가?
캐논데일은 뉴로드를 “포장, 비포장을 따지지 않고 모든 길을 달릴 수 있는 특별한 라인업”으로 설명한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되지만, SE 모델의 부품구성을 보면 대부분 등판력을 고려한 낮은 기어비를 갖고 있고, 기본 모델보다 더 넓은 타이어에 튼튼하게 짜인 휠셋이 장착됐다. 그렇다고 시냅스 카본 디스크 SE가 전형적인 그래블바이크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SE 컬렉션의 특징에서 언급했듯이 시냅스를 더욱 다양한 라이딩 환경에 대응하도록 부품구성을 한 것이므로 그 정체성은 여전히 로드바이크다.
뉴로드, SE 컬렉션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일반 모델과 SE 모델의 차이를 먼저 살펴보자.
실제로 일반 시냅스와 시냅스 SE의 프레임은 같다. 인듀어런스 레이스에 적합하게 만든 지오메트리며, 32㎜인 타이어클리어런스, 주행 진동과 충격을 흡수하는 세이브 마이크로서스펜션 공법까지 똑같은 캐논데일의 발리스텍 카본 프레임이다.
시냅스 중 SE 컬렉션에 포함된 모델은 본 기사에서 시승한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와 시냅스 카본 디스크 아펙스,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우먼 아펙스가 있다. 부품군으로 등급을 나눈 것이니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가 시냅스 SE 중 최상급 모델이다.
일반 시냅스 중 동급 모델은 같은 부품군을 쓴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이다. 이 모델은 크랭크셋을 제외하고 R8020 유압디스크브레이크가 적용된 시마노 울테그라 그룹셋을 장착했다. 하지만 그 외에 크랭크셋, 휠셋, 타이어, 스템과 핸들바, 안장까지 모두 다르다.
(이하 ‘시냅스’와 ‘시냅스 SE’로 구분) 시냅스의 크랭크셋은 FSA 50/34T 체인링을 단 캐논데일 Si이고, 시냅스 SE는 캐논데일 할로우그램 Si, OPI 스파이더링(한 덩어리 단조 알루미늄을 CNC로 깎아 만든 캐논데일의 이너, 아우터 카세트 체인링) 50/34T를 달았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이 휠셋이다. 시냅스는 마빅의 보급형 휠셋 악시움 디스크와 28C 클린처 타이어를 쓴다. 반면 시냅스 SE는 포뮬러 허브와 WTB KOM i21 림(림 베드 내폭이 21㎜인 와이드림), 더블버티드된 스테인리스 스포크 28개를 2크로스로 엮은 커스텀 휠셋을 장착했다. 타이어 또한 WTB의 익스포셔(Exposure) 30C를 썼는데, 휠셋과 타이어 모두 튜브리스 레디 타입으로 밸브 킷과 실런트를 사용하면 튜브리스 세팅이 가능하다. 핸들바와 스템 역시 내구성과 무게에 있어 더 높은 등급의 부품이 쓰였다
시트스테이 아래쪽, 포크 크라운, 포크블레이드 안쪽에는 물과 이물질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펜더용 마운트 홀이 있다.
처음, 그 즐거움으로의 회귀
살펴본 바와 같이 시냅스 SE는 일반 시냅스보다 내구성과 승차감이 높은 부품을 썼다. 앞서 이렇게 부품이 구성된 이유를 ‘다양한 노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했지만, 실상 SE 컬렉션을 포함한 뉴로드를 설명하는 뉘앙스를 살피면, 여행과 모험, 낭만과 즐거움을 찾는 길 또는 그런 라이딩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캐논데일은 SE 컬렉션으로 뉴로드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사가 운영하는 블로그, 캐논데일 크로니클즈(chronicles.cannondale.com)를 통해 자전거여행과 모험에 대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자전거여행에 힘을 주는 이유는 최근 세계적으로 자전거여행이 각광받는 분야라는 점도 있지만, 캐논데일의 시작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캐논데일은 1971년 조 몽고메리와 머독 맥그리거가 미국 코네티컷 주 페어필드의 작은 마을, 피클공장 다락방에서 창업한 회사다. 캐논데일이라는 회사명은 이 마을의 이름이자 회사 건너편 철도역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창업 당시 캐논데일은 자전거 회사가 아니었다. 조립식 주택용 콘크리트 벽체를 개발하는 회사로 시작했고, 이후 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내연기관을 개발하다가 연구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작한 수익사업이 자전거 생산에까지 이르게 됐다.
캐논데일이 자전거 관련 제품으로 처음 만든 것은 자전거용 트레일러다. 캐논데일의 공동창업자인 조 몽고메리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이 제품은 어린 아들과 함께 한 자전거여행이 단초가 됐다. 캠핑장비에 어린 아들까지 자전거 짐받이에 태웠으니 지옥 라이딩이 불 보듯 뻔 했으리라. 이 경험으로 어린이와 짐을 함께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개발했고, 이어 텐트용 천을 활용한 경량 페니어와 핸들바 가방도 만든다.
트레일러와 자전거 가방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소재와 기계공학에 밝은 직원들로 구성된 캐논데일은 당시 가벼운 재료였던 알루미늄을 자전거 프레임 소재로 개발한다. 대구경 알루미늄 튜브를 러그 없이 지그에서 맞대어 용접한 후 열처리하는 방식으로 자전거 제작에 신기원을 마련했다. 1983년 처음 만든 이 자전거 역시 여행용 자전거였고, 이후 개발을 거듭해 대구경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그랜드투어에 진출하는 자전거가 된다. 캐논데일 알루미늄 기술의 명칭이자 지금까지도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는 CAAD(Cannondale Advanced Aluminum Design)이다.
시냅스에서 CAAD까지 이야기가 조금 멀리 돌아온 감도 있지만 SE 컬렉션의 근간에 CAAD와 시냅스가 포함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CAAD가 캐논데일 최초의 자전거이자 알루미늄 레이스 프레임으로 발전을 거듭한 모델이라면, 시냅스는 캐논데일 최초의 카본 로드바이크로서 험난한 클래식경기를 통해 진동흡수와 승차감을 꾸준히 개량한 모델이다.
조 몽고메리의 자전거여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캐논데일이 됐고, 캐논데일의 여행용 자전거는 레이스바이크가 됐다. 이제 그 레이스바이크가 편의를 위한 옵션을 착착 달고, 라이더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 길을 나서길 고대하고 있다.
시냅스 카본 디스크 울테그라 SE의 색상은 그래이 한 가지이고, 44, 48, 51, 54, 56까지 5가지 사이즈가 있다. 무게는 54사이즈 기준 8.17㎏(실측치)이고, 가격은 412만원이다.
내게 사이클링은 좋은 친구와 같다. 사이클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체육을 전공했고, 자전거를 좋아해 꾸준히 타왔다.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을 비롯해 친목 라이딩을 즐기고 치열한 경기에 보단 마음 편한 완주대회에 나가곤 한다.
시냅스 SE의 시승 제의를 받았을 때, ‘내 생활의 어떤 부분이 이 자전거에 어울릴까’ 잠깐 의아했지만, 캐논데일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니 어쩐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일, 시승자전거에는 대용량 핸들바 가방과 안장 가방까지 달아 놓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전거의 컨셉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타이어는 돌기가 없는 로드 타입이지만 험로에서도 접지력과 승차감을 유지하기 편하도록 두툼했다. 안장 높이를 조절하느라 잠깐 자전거에 올라보니 내 자전거보다 핸들바가 가깝고, 높다. 장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라 일반 레이스 바이크보다 허리를 펴고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란다. 내 입장에서 첫인상은 ‘일반 로드바이크랑 같은데 타이어가 조금 두껍네’하는 정도였다.
도시에서 500m 떨어진 오지로
오히려 색다른 건 유압디스크브레이크였는데, 이 또한 적응에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다. 평소 브레이크를 과격하게 잡지도 않을뿐더러 상상했던 것처럼 원치 않는 급제동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제동 컨트롤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 라이딩 코스는 용인에서 분당으로 이어지는 내 출근길을 잡았다. 보통 탄천으로 이동하며, 고기리 고개를 넘어서 다니는데, 시냅스 SE가 여행과 모험에 어울리는 자전거인 만큼 어딘가 탐험가들이 갈만한 길을 경유하고 싶었다.
이런 경험도 기회다 싶어서 평소에 내 자전거로는 갈수 없는 문형산 비포장도로를 가기로 했다. MTB 동호인들이 라이딩하는 초입을 알고 있던 터라 무턱대고 찾아가 보았다.
일반적인 로드바이크를 타고서는 일부러 찾지 않을 곳이지만 앞뒤에 큰 가방도 달고, 흙먼지 날리는 길로 들어서니 내가 마치 정말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 같다. 초입 오르막이 꽤 가팔랐지만 컴팩트드라이브 크랭크셋에 스프라켓도 1단이 34T나 되어 업힐은 문제가 없었다.
거칠거칠한 콘크리트 도로를 지나 정말 흙길로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어색하다. 포장된 도로였다면 쌩하고 지났을 테지만, 마른 길인데도 느리고 조향은 구불구불 울렁울렁한다. 타이어가 넓어도 MTB처럼 돌기가 없으니 모래나 흙이 많은 곳은 컨트롤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실 난 이런 비포장도로를 라이딩 해본 적이 없다. MTB를 타본 적이 있지만 친구 자전거를 도로에서 잠깐 경험해본 정도다. 조금 과장해서 내 자전거 두 배는 될 것 같은 시냅스 SE의 타이어만 믿고, 비포장도 포장된 것처럼 쌩쌩 달려주겠노라 했건만 생각 같지 않다. 비포장도로의 너울에 조금 익숙해질 쯤 제법 속도가 붙었다고 생각해 속도계를 봤더니 한 자리 숫자를 간신히 넘어 오르내리는 그런 정도.
알지도 못하는 길을 계속 갈 순 없으니 큰길을 찾아 돌아섰는데,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도로에서보다는 느리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치고, 아스팔트 도로에서 느끼지 못하는 싱그러움이 있다. 이 맛에 외진 곳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도에 대한 상대성
나의 짧은 오지 탐험은 입산 한 시간 만에 끝났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여행용 가방을 다 떼어내고, 맨 자전거로 평소처럼 도로를 달려 봤다. 속도를 올려도 흔들림이 없고, 주행풍도 더 거셌으며, 브레이크 또한 잘 듣는다.
바퀴가 커서 무게감이 있지만 속도나 민첩함에서 레이스바이크라는 내 자전거와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승차감과 주행진동을 줄이는 기술들이 들어갔다니 강하게 댄싱을 하면 왠지 낭창거리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오늘의 라이딩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비포장 길에서 쑥쑥 더 잘 달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냅스 SE는 도로에서 더 익숙했고 빨랐다. 가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을······.
인터넷 검색으로 다시 찾아본 캐논데일 시냅스는 의외로 인듀어런스레이스 로드바이크란다. 내가 탄 시냅스 SE는 여기에 투툼하고 튼튼한 바퀴를 단 것일 뿐이고 포장된 도로뿐만 아니라 거친 노면도 라이딩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더 빨리, 더 잘······’, 이렇게만 생각했으니 뭔가 한참 오해를 한 모양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로드바이크로 처음 라이딩 한 흙길은 색달랐다. 익숙하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두근거림이 있었다. 충분히 빠른 자전거로 느릿느릿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는 겸손한 라이딩을 한 날이다. 이런 게 어디선가 읽었던 느림의 미학, 내려놓음의 편안함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다시 이 자전거에 더 믿음직한 타이어를 달고 출퇴근길을 벗어나 그 길로 들어가 보리라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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