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투르 드 프랑스의 대장정이 그 막을 내렸다. 선수들은 6월30일 벨기에 리에주(Liege)에서 출발해 7월22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Paris Champs-Élysées)까지 23일 동안 3,497㎞, 21개 경기를 소화했다. 길었던 경기 일정만큼 다양한 기록과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온 올해의 투르 드 프랑스. 주목해야 할 선수들과 주요 사건을 다시 한 번 짚어본다.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
22개 팀, 198명의 선수가 투르 드 프랑스의 무대에 올랐고, 9개 팀, 13명의 선수가 구간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13명의 스테이지 우승자 가운데 가장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마크 카벤디쉬(Mark Cavendish, 스카이 프로사이클링)다. 그의 투르 드 프랑스 구간우승기록은 올해 3번을 더해 통산 23회. 이는 역대 4번째, 현직 선수 중 최다 우승 기록이다. 투르 드 프랑스 역대 최다 구간우승기록은 에디 먹스(Eddy Merckx, 벨기에)의 34회. 카벤디쉬가 매 경기 평균 4~5회의 구간우승을 기록한 것과 85년생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수년 내에 기록갱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스테이지에서 1위로 골인하는 마크 카벤디쉬. 이로써 그는 샹젤리제 4연승, 투르 드 프랑스 통산 23번째 구간우승을 기록했다.
카벤디쉬를 비롯해 2012 투르 드 프랑스에서 보여준 스카이 팀의 전력은 막강했다. 브래들리 위긴스(Bradley Wiggins)는 옐로저지를 입고서도 동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엔 리드아웃맨으로 나섰다. 18구간과 20구간에서 카벤디쉬를 인도해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피니쉬라인 앞까지 빠르게 돌파하는 역할을 수행해 카벤디쉬의 우승에 힘을 보탠 것이다. 위긴스가 개인 타임트라이얼에서 보여준 기록 또한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가 우승한 9구간과 19구간의 타임트라이얼에서 2위와 차이는 각각 35초와 1분16초였다.
종합우승을 차지한 위긴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산악구간이다. 산악구간에서 위긴스의 도움선수(domestique)로 활약한 건 크리스토퍼 프룸(Christopher Froome, 스카이 프로사이클링)이다. 프룸은 타임트라이얼에서도 두각을 보여 위긴스의 종합우승을 위협했던 유일한 선수기도 했다. 그는 같은 팀의 위긴스를 위해 희생플레이를 계속했지만, 내년에는 우승을 목표로 경기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룸은 “투르 드 프랑스가 시작하기 전엔 나 스스로가 이렇게 잘 달릴 거라 예상하진 못했다”고.
브래들리 위긴스의 리드아웃은 카벤디쉬가 우승할 수 있도록 한 큰 원동력이었다.
크리스토퍼 프룸은 올해 경기에서 종합우승을 노리는 GC라이더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스카이 팀의 트리오만큼이나 큰 활약을 보여줬던 건 피터 사간, 티제이 반 가더른, 티보 피노의 영라이더 3인방이다. 피터 사간(Peter Sagan, 리퀴가스 캐논데일, 90년생)은 올해가 투르 드 프랑스 첫 경험. 슬로바키아의 이 젊은 선수는 그린저지와 3번의 구간우승을 휩쓸며 강력한 스프린터의 등장을 알렸다. 티제이 반 가더른(Tejay Van Garderen, BMC 레이싱, 88년생)은 카델 에반스(Cadel Evans, BMC 레이싱)를 돕는 도움 선수에서 메인선수로 경기 중 승진한 케이스다. 티제이는 카델 에반스를 도우면서 베스트 영 라이더 저지까지 차지했고, 마지막엔 카델 에반스를 앞서 개인종합순위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2 투르 드 프랑스 최연소 참가자였던 티보 피노(Thibaut Pinot, FDJ)는 8스테이지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공격에도 자주 가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피터 사간은 투르 드 프랑스 첫 출전에서 그린저지와 3번의 구간우승을 차지하며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86년 이후 출생한 선수 중 가장 기록이 우수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베스트 영 라이더를 수상한 티제이 반 가더른.
티보 피노는 투르 드 프랑스 최연소 참가자로서 8스테이지에서 우승을 거뒀다.
옌스 포크트(Jens Voigt, 라디오섁)는 젊은 패기에 맞선 노장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는 올해 투르 드 프랑스의 최고령 참가자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섁의 팀 종합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많은 경기에서 브레이크어웨이에 참가했고, 팀 내 성적 또한 우수해 팀 종합순위 시간 단축에 큰 공헌을 했다. 조지 힝캐피(George Hincapie, BMC 레이싱)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총 17번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해 최다 투르 드 프랑스 참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내년 투르 드 프랑스에선 그를 볼 수 없다. 힝캐피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19년간의 프로사이클링 선수생활을 마친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선 스포츠맨십
영광의 이면에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투르 드 프랑스의 무대를 떠나야 했던 선수들도 있었다. 2012 투르 드 프랑스의 모든 경기를 완주한 선수는 198명 중 153명이었다. 완주를 포기한 45명의 대부분은 낙차사고로 부상당한 선수들이었고, 실뱅 샤바넬(Sylvain Chavanel, 퀵 스텝) 등 몇몇 선수는 기존의 병이나 통증으로 경기를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그 외의 특별한 이유로 집에 돌아간 선수도 있었다. 경기 초반 옐로저지를 입었던 파비앙 칸첼라라(Fabian Cancellara, 라디오섁)는 둘째 아이의 출산을 지켜보려 스위스로 돌아간 경우다. 프랭크 쉴렉(Fränk Schleck, 라디오섁)과 레미 디 그레고리오(Rémy Di Gregorio, 코피디스)는 금지약물 스캔들로 인해 경기를 중단했다. 쉴렉은 소변 샘플에서 금지약물인 시파메드(Xipamide)가 발견되어 경기중단을 자진선언했고, 그레고리오는 호텔에서 휴식 중 경찰에게 약물복용으로 체포되었다. 시파메드는 사이클링 경기에서는 금지약물이지만, 법적으로는 불법이 아니어서 쉴렉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은 없었다.
2012 투르 드 프랑스 초반부, 옐로저지를 입었던 파비앙 칸첼라라는 둘째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부상을 당한 선수들 중엔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이들도 있었다. 토니 마틴(Tony Martin, 퀵스텝)은 1구간에서 낙차사고에 휘말려 왼쪽 손목이 부러졌다. 하지만 현행 타임트라이얼 세계 챔피언인 그는 9스테이지의 타임트라이얼 경기를 마칠 때까지 투르 드 프랑스에 머물렀다. 토니 마틴은 12위로 9구간 타임트라이얼을 마친 뒤 경기를 떠났다. 2012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투지를 보여준 선수(Most aggressive rider)에게 수여되는 수퍼-컴배티브(Super-Combative)를 수상한 크리스 앵커 소렌슨(Chris Anker Sorensen, 삭소뱅크)의 부상 투혼도 돋보였다. 그는 17구간에서 왼손의 피부가 일부 찢기는 부상을 당했다. 소렌슨은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완주해 24위로 골인했다.
팀 삭소뱅크-틴크오프뱅크(TEAM SAXO BANK-TINKOFF BANK)의 크리스 앵커 소렌슨은 143.5㎞의 17스테이지 경기 중 53㎞지점에서 낙차사고로 부상을 당했지만 전 구간을 완주해 24위로 골인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사진 스페셜라이즈드 코리아)
투르 드 프랑스의 미덕이라면 투지와 함께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빼 놓을 수 없다. 14구간 경기에서 카델 에반스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뿌려진 압정에 의한 펑크로 시간을 지체했다. 종합 1위의 브래들리 위긴스는 이미 해당 구간을 무사히 지난 후였지만, 카델의 상황을 알고 즉시 속도를 줄였다. “경기 외적인 요소로 승부하지 않는다”는 사이클링의 암묵적인 룰을 실천한 것. 이런 사례는 과거의 투르 드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3년, 미국의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미국)은 경기 중 관람객의 가방에 핸들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암스트롱과 16초 차이로 뒤지던 얀 울리히(Jan Ullrich, 독일)는 암스트롱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암스트롱과의 시간차를 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울리히는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릴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울리히는 2003년 경기에서 2위에 머물렀지만 그의 스포츠맨십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았다. 투르 드 프랑스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이런 스포츠맨십 때문이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에선 몇 명의 강력한 선수들이 새롭게 이름을 알렸고, 투지와 끈기로 멋진 드라마를 보여준 선수들도 많았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조명을 받는 선수는 마요 존(Maillot jaune)을 입는 개인종합순위 1위지만, 우승의 뒤편에는 팀의 지원과 동료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의 영광을 위해 동료들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 올해 투르 드 프랑스 시즌은 설레임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렇게 막을 내렸다. 1903년 시작된 투르 드 프랑스는 내년 대망의 100회 대회를 맞는다. 선수들이 그려낼 새로운 드라마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