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에 우리나라 사이클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 사상 가장 많은 종목에 출전한다. 그 중에서도 성질 급하게 개막일부터 승부를 펼치는 종목이 있다. 더구나 다른 종목들처럼 예선전도 없고 화끈하게 단판 승부를 펼친다. 바로 사이클 도로경기다.
아름답고도 잔혹한 250㎞
올림픽 사이클 도로경기는 모든 사이클 도로경기 중 가장 잔혹한 경기거리를 자랑한다. 콘티넨털선수권대회의 최대 경기거리(남자엘리트 기준)가 240㎞인데 비해 올림픽 도로경기(세계선수권 포함)는 최소 250㎞부터 최대 280㎞로 정한다. 일반적인 스테이지 레이스가 전체 구간평균 180㎞를 넘지 못하는 규정에 비하면 상당한 거리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는 중국이 만리장성의 위용을 자랑한답시고 280㎞가 넘는 올림픽경기 거리가 나올 뻔도 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와 UCI가 선수 보호를 명목으로 만류에 나서 최소 경기거리인 250㎞로 정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올해 런던올림픽 도로경기 거리도 250㎞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소재로 사이클 도로경기 코스가 만들어 졌다.
혹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랜드투어에서도 230~240㎞의 경기거리가 간간히 나오는데, 십수킬로미터 늘어나는 것에 웬 호들갑이냐”고 말이다. 그랜드투어처럼 스테이지 레이스는 기본적으로 팀 단위로 출전하는 팀 경기다. 하지만 올림픽경기는 국가대표가 출전하는 개인도로경기. 따라서 대놓고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수도 있다. 또한 팀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출전선수가 적은 나라일수록 불리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경기를 펼쳐야 한다. 생각해 보면 어떤 누군가는 아주 외롭고 긴 고행길이 될 수도 있는 경기가 올림픽 도로경기다.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는 더 몰과 박스 힐
올림픽 개막일인 7월 28일(토), 우리시간으로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사이클 남자 도로경기는 웨스트민스터지구 더 몰(The mall)이라는 편도 3차선 도로에서 시작한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인접한 이 길은 북동쪽으로 트라팔가 광장과 이어지고 남서쪽으로 버킹엄 궁 앞을 지난다.
2012 런던올림픽 도로경기 코스는 더 몰을 출발해 런던 남서부의 박스 힐을 9바퀴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250㎞의 코스다.
도로경기는 더 몰을 출발해 버킹엄 궁을 지나 서남쪽으로 계속 진행한다. 출발 후 24.3㎞, 경기대열은 18세기까지 영국왕실 궁전이던 햄프턴 궁을 지난다. 또한, 이때까지 런던을 굽이치는 템즈강을 무려 3번이나 건너기도 한다. 하지만 코스는 계속 평탄대로다.
웨스트호르슬리(49㎞)를 들어서며 시작된 완만한 언덕이 이스트클랜든(53㎞)을 지나며 평균경사 5%, 최대 경사도 8.4%로 변한다. 길이는 3㎞, 등반고도는 100m에 불과하지만 처음으로 경기속도가 줄어드는 지역이다. 업힐을 지나면 곰숄(60㎞)까지는 다운힐. 곰숄을 지나며 다시 은근한 오르막을 오르지만 평균경사 1.8%의 아주 약한 업힐이다. 워턴(64㎞)을 지나며 시작된 내리막은 이번 올림픽코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박스힐(Box hill) 입구(71.7㎞)까지 7.7㎞를 이어진다.
박스 힐의 15.5㎞ 중 5.3㎞가 오르막이다. 특히 초반의 2㎞, 지그재그구간은 평균경사 5.5%, 최대경사 9.6%로 선수들 간의 경쟁이 불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박스 힐은 런던 남서부의 전원지대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일찍이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파크로 지정되었으며 생태계 보존지역이기도 하다. 이 박스 힐로 들어서는 길을 지그재그로드라고 하는데 이름에서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경사가 심하고 구불거리는 길이다. 남자 도로경기는 이 박스 힐을 총 9번(여자 경기는 2번) 돌고 다시 출발지이자 결승선인 더 몰로 다시 향하게 된다.
9번 도는 박스 힐 순환코스는 진입로가 다른 첫 번째 바퀴와 한 바퀴를 채 돌지 않고 나가는 마지막 바퀴를 제외하면 한 바퀴에 15.5㎞다. 이 중 5.3㎞가 힐클라임 구간이며 초반 2㎞의 지그재그구간이 평균경사도 5.5%, 최대경사 9.6%로 경기대열이 급격히 감속되는 지역이다. 따라서 선수에게는 아주 지겨운 구간이 될 수도 있지만 관중에 입장에서는 출전선수를 집중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런던올림픽 위원회는 이 지그재그로드부터 내리막이 시작되는 동키그린까지의 지역을 도로경기 출발·결승선인 더 몰과 함께 관람권을 구입해야 입장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했다.
박스 힐을 벗어난 경기대열은 레더헤드 방향으로 북상한다. 햄프턴 궁(226.2㎞)을 동쪽으로 끼고 돌아 킹스턴 어폰 템즈를 경유해 영국왕립공원인 리치몬드파크 서변을 따라 북으로 이동, 에초에 출발한 코스와 다시 만나(235㎞) 더 몰로 향한다.
카벤디쉬, 위긴스 그리고 박성백
올림픽 남자 도로경기 출전권은 한 국가당 UCI 월드투어랭킹으로 최대 5명, 국가순위로 1명을 출전시킬 수 있다. 단, 월드투어랭킹으로는 총 70명까지만 선발되고 이후 국가순위에 의한 선발은 각 대륙별 쿼터기준을 초과할 수 없는 규정이 있다.
그 결과 최대 출전인원인 6명을 알뜰히 채워 내보낸 나라는 이탈리아 한 곳 뿐이다. 빈센조 니발리와 비비아니 엘리아(리퀴가스 케논데일), 파올리니 루카(카츄샤), 피노티 마르코(BMC레이싱), 트렌틴 마테오(오메가 팔마 퀵스텝)까지 총 6명이 도로경기에 출전한다.
미국을 포함한 7개 유럽국가들도 무려 5명씩 국가대표를 내보내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나라가 개최국인 영국이다. 다른 나라의 대표들도 화려한 스타들이지만 영국의 국가대표가 돋보이는 이유는 영국 도로경기 국가대표 5명 중 스카이사이클링에서만 무려 4명이 선발됐다는 점이다. 그 구성을 보면 강력한 우승후보인 세계챔피언 마크 카벤디쉬, 올해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자인 브래들리 위긴스, 그리고 위긴스의 전담 리드아웃맨인 크리스토퍼 프룸과 팀의 날개 이안 스타너드,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데이비드 밀라(가민-샤프). 데이비드 밀라는 스카이 팀은 아니지만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당시 영국국가대표 주장을 맡아 마크 카벤디쉬의 우승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듣는 인물이다. 2012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는 12구간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마크 카벤디쉬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소속팀인 스카이가 옐로저지에 집중한 탓에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지 못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아쉬움을 모두 설욕하겠단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으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브래들리 위긴스는 올림픽에서 마크 카벤디쉬를 돕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실, 이쯤 되면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프로팀의 팀플레이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위긴스는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팀을 위해 희생한 마크 카벤디쉬를 위해 올림픽에서 그를 배달하겠다”며 그의 도우미를 자처한 바 있다.
한편, 지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스페인의 사무엘 산체스는 지난 투르 드 프랑스 경기도중 부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바 있다. 반면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스위스의 파비앙 칸첼라라는 다시 한 번 올림픽 시상대를 꿈꾸고 있다.
홍콩은 아시아국가 중 유일하게 3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그 중 한 명이 아시아 도로랭킹 1위인 웡 캄포다. 우리에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투르 드 코리아의 단골손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벳부 후미유키(오리카-그린엣지), 아라시로 유키야(유로카)가 출전한다. 두 명 모두 유럽 프로팀에서 활동한다.
우리나라는 투르 드 코리아 종합우승자인 박성백이 이들과 함께 경기를 뛴다. 홀로 출전에 고전이 예상되지만 올해 투르 드 프랑스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피터 사간도 조국 슬로바키아를 위해 단독 출전인 것은 마찬가지. 부디 그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다음 날 출전하는 여자 개인도로경기의 나아름도 최선의 결과가 있길 바란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26개국 대표선수가 홀로 도로경기에 참가한다. 사진은 조국인 슬로바키아를 대표해 홀로 올림픽 도로경기에 참가하는 피터 사간.
우리나라 선수로는 2012 투르 드 코리아 종합우승자인 박성백이 출전한다. 그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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