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위스 박경래 대표(上)

인터뷰위아위스 박경래 대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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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엔윈(WIN&WIN)의 박경래 대표의 인생은 늘 도전이었다. 우리나라 첫 양궁 국가대표선수였고, 처음으로 남자대표팀 코치를 맡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도 선수들을 이끌고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왔다. 자신이 감독한 선수들과 함께 세계 1위라는 영광을 수차례 맛봤고, 돌연 경기용 활의 국산화에 도전해 결국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 점유율 40% 이상. 런던 올림픽 참가 선수의 51%가 윈엔윈 제품 사용. 생산량의 98%를 수출하는 윈엔윈은 20여 년 만에 역사가 100년이 넘는 기업을 제치고 세계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 윈엔윈이 위아위스(WIAWIS)라는 브랜드로 카본 자전거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활과 마찬가지로 국내 개발과 생산을 원칙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이다.

   

윈엔윈의 시작 – 선수가 원하는 ‘기능’에 집중한 활을 만들어 보자

활을 만들 게 된 계기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현재 경기용 활을 만드는 회사는 세계에 6~7개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의 호이트와 일본의 야마하가 가장 유명했지요. 우리나라 선수들의 절반 정도는 야마하를, 남은 절반이 호이트를 썼으니까요. 두 업체 모두 역사가 깊어서 야마하가 60여 년, 호이트는 100년이 넘은 기업입니다. 활의 명품이라고 하면 이 두 회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봐도 80~90%의 선수들이 이 두 회사의 제품을 썼지요. 지금은 80~90%의 선수들이 윈엔윈과 호이트의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야마하는 그 사이 활 제조를 그만두었지요. 

제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 무척 많이들은 말이 있습니다.  

“돌았다.”

당시 초대 상임 감독으로서 지도자협회라거나 실업연맹, 대학연맹 등에서 모두 중요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토지공사의 양궁팀 감독이었고, 국가대표감독을 겸했기 때문에 당시 연봉도 상당했지요. 1억 원이 넘었으니까요. 이렇게 잘 나가던 시절에,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갑자기 활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섰으니까요. 

지금이야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하면 사람들이 애착도 갖고, 품질도 인정을 해 주지만 20년 전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흔히들 낮춰 보는 요즘의 중국산 제품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을 때였죠. 외산에 대한 선호가 굉장히 강했던 시기였어요. 

국내에 양궁 회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제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경기용 제품과는 격차가 너무나 컸습니다. 입문자들이 사용하는 저가용 활들을 만들었죠. 경기용 활을 국산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었죠. 이런 상황이었으니 양궁 산업에 뛰어든 저를 보고 모두 돌았다고 한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냐하면, 제가 남자 팀 코치를 맡게 되면서 세운 목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는 것이었죠.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을 제패하는 것으로 그 당시 실현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그런데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큰 목표를 달성한 나이가 너무나 젊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겨우 삼십대 중반의 일이었으니까요.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 허탈감이 몰려왔습니다. 지도자로서 목표를 계속 이어갔다면 이후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 더 메달을 획득하고, 양궁 관련 책도 집필했겠지요. 당시 세웠던 목표가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달성하고 나니 낮은 목표가 되어 버린 겁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지만, 그때는 굉장히 높은 목표였습니다. 그런 것을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다 이뤄버린 겁니다. 그래서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어떤 활이 좋은 것이냐는 것은 몸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좋은 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야말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돈 사람이 맞네요. 그렇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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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엔윈이 만든 활. 위가 대나무와 카본으로 만든 ‘날개’이고, 아래쪽에 있는 것들이 알루미늄 또는 카본으로 만든 ‘손잡이’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양궁계에서 저를 말할 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닙니다.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첫 양궁 국가대표였고, 처음으로 남자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서 198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이뤘고,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90년부터는 초대 남녀 상임 총감독을 맡아 남녀 동반 우승을 이뤘습니다. 국내 첫 양궁 국제심판이기도 했죠. 그래서 ‘첫’, ‘처음’이라는 것이 생소하지 않습니다.  

선수나 지도자로서 처음이었던 것 외에도 양궁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도 무척 많습니다. 그동안 쌓았던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모두 내려놓고, 활을 직접 만들어보자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20년이 넘었습니다. 

초기에는 어땠습니까? 사업은 괜찮았는지요. 

천만에요. 첫 2년 만에 다 말아먹었죠. 그런데 그런 실패와 도전의 과정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라는 위기감, ‘반드시 해야 한다’는 목표. 알루미늄 단조와 카본 기술은 모두 지속적인 투자에 의해서 얻은 겁니다. 

1995~6년 알루미늄 단조기계가 당시 가격으로 5억 원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투자해서 단조기계를 구입했죠. 이어서 열처리 시설도 구입했고요. 당시 구입했던 기계들이 지금은 저희 중국 공장에서 가동 중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투자와 개발을 하면서 성장하다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야마하의 카본 생산설비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활을 만드는 기술은 야마하보다 우리가 낫다고 여겼지만, ‘카본’을 다루는 기술 자체는 야마하가 뛰어났습니다. 그 카본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2년 여러 카본 기술자들을 영입했지요. 그리고 이듬해에는 15억 원에 달하는 카본 프리 프레그 기계를 도입했습니다. 또 다시 회사 전체의 자금을 투입한 순간이죠. 

야마하가 상당한 투자를 해서 개발한 신제품이 실패를 하고 말았는데요. 야마하의 스포츠 사업부 중에서 양궁이 가장 오래된 사업이었고, 스키와 테니스, 골프는 최신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양궁과 골프의 담당자들이 거의 겹쳤지요. 공통된 소재인 카본을 다뤘으니까요. 이때 양궁에서 큰 실패를 겪었고, 그 결과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어요. 그 사이 우리 윈엔윈은 일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일본 시장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인들은 자기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명품에 대한 선호도도 세계 최고이고요. 그래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진출하기 상당히 어려운 시장입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아직 힘을 못 쓰는 곳이 바로 일본 시장입니다. 그 정도로 시장장벽이 높은 곳이죠. 

지금 윈엔윈의 일본시장 점유율이 6~70% 정도입니다. 일본 제품과 미국 제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쏴 보니 다르더라’라며 품질에 대해서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동계올림픽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요즘은 방송기술이 좋아져서 고속촬영을 통한 슬로우모션의 화질이 아주 좋습니다. 스키의 경우 엣지 부분에 힘이 몰릴 경우 위아래로 충격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활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활이 충격을 받았을 때 비틀리면서 움직이는 정도를 줄여야 안정성을 갖게 되고 정확도가 높아지지요. 충격에 대비하고 제어하는 부분에서 최고로 발달된 것이 바로 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정확성 때문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노하우가 확실했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스포츠제품을 만든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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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래 대표는 양궁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다. 선수 생활 이후 코치와 감독을 거쳤고 지금은 세계 점유율 1위인 활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담한 투자였군요. 결단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절실함 때문이었습니다. 투자와 연구 개발을 하지 않고서는 두 회사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회사 설립 초기, 알루미늄을 다루는 두 회사의 기술을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솔리드 알루미늄을 CNC로 가공해서 정말 멋지게 만들어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수준으로 만들려면 비용이 오히려 몇 배나 더 듭니다. 미국에서 하나를 만드는데 10만 원 정도가 든다면, 우리는 50만 원이나 드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제조비용을 줄이려면 단조 외에는 없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조 제품은 비쌉니다. 연안정밀은 윈엔윈보다 먼저 단조 가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크럭스 자전거의 부품이 전부 단조를 통해 만든 건데,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활도 단조로 제작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일단 단조를 하면 가공 면적이 크게 줄어듭니다.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활의 경우에는 긴 손잡이 전체를 CNC로 가공한다면 가공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단조로 원하는 모양을 잡은 후 필요한 부분만 가공을 한다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듭니다. 단조를 통해 알루미늄 자체의 품질을 높여서 진동을 줄이고, 충격에 견디는 강도가 좋아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단조기계에 과감한 투자를 했고, 실제로 제품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활을 단조하게 된 것은 크럭스 자전거의 단조 부품을 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윈엔윈의 사명 유래는 무엇입니까. 

22년 전 회사의 이름을 윈엔윈으로 지을 때는 요즘처럼 상생하자는 의미로 ‘윈윈’이라는 말을 쓰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미국인과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윈엔윈이 여러 가지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는 것을 들었고, 회사명을 확정한 후 이름이 좋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죠. 이제 자전거 쪽에서 ‘위아위스’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차롑니다. 

활을 직접 만들면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대회에서 승리하고 선수들이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선수들의 성적입니다. 경기에 쓰이는 스포츠용품은 대부분 그렇죠. 윈엔윈의 활이 성공하게 된 배경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양궁을 잘 해서라든지, 양궁 시장이 커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활로 국궁이 있듯, 양궁은 유럽의 전통 활입니다. 유럽에선 대단한 인기가 있고, 양궁을 즐기는 사람의 수도 상당합니다. 가까운 일본을 봐도 등록된 사람만 2만 명이 넘을 정도지요. 우리는 훨씬 적고요.

우리 선수들이 잘 해서 윈엔윈이 알려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선수의 성적이 곧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에서의 결과가 선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다른 나라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이 그저 ‘국산’이라는 이유로 우리제품을 쓸 일은 없습니다. 선수들은 오직 ‘최고’의 제품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제품에 대해 평가를 할 때 감성적인 면도 크게 보기 때문에 제품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얻기가 상당히 어려운 편입니다. 다른 나라의 선수들은 활에 대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수치로 판단을 하죠. 그래서 설득하기가 오히려 쉬운 편입니다. 성능에 대해서 입증을 하면 되니까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자신이 직접 쏴보고, 점수가 더 잘 나오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이 나왔을 때도 받아들이는 시기가 늦는 편이죠. 

우리 활이 성공하게 된 계기는 사실 일본에 있습니다. 윈엔윈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은 시장이 바로 일본이었죠. 일본에서 성공을 하면서 자연히 유렵에 알려졌고 그 다음 우리나라 선수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윈엔윈의 활로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이듬해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윈엔윈의 성능이 빠르게 알려졌고 지금은 독보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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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위스의 활에 쓰이는 카본 날개. 하나의 모델마다 날개의 길이가 3가지로 나뉘고, 활의 세기(파운드)가 10가지 이상으로 나뉜다. 따라서 생산과 재고 관리가 무척 까다롭다. 

호이트와 야마하가 유명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윈엔윈이 더 강점을 보였는지요.

일본과 유럽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운도 제법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요. 카본이 본격적으로 활에 도입이 되던 시기였는데, 당시의 카본 활은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야마하와 호이트 제품들도 이런 문제가 있었지요. 호이트의 경우에는 카본 날개뿐만 아니라 카본 날개에서 전해져 온 충격이 알루미늄 손잡이에까지 영향을 줘서 손잡이까지 파손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활은 대나무를 주소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양궁이 스포츠화되면서 글라스파이버로 만들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 카본을 사용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화살도 카본화되면서 활이 받아야 할 충격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현을 쓰면서 충격은 다시 한 번 커졌지요. 이렇게 활을 이루는 것들의 소재가 변하던 시기가 바로 윈엔윈이 사업 초기였던 20여 년 전이었어요.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여서, 호이트와 야마하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호이트는 카본을 이용해 내구성이 높은 활을 만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야마하조차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러지지 않는 휠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 ‘부러지지 않음’이라는 것은 안정성 그리고 정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충격을 얼마나 잘 견디고 받아주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우리 활을 쏴보니 안 부러지고 잘 맞더라는 거죠. 이런 점이 알려지면서 호이트와 야마하를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고,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윈엔윈이 ‘안 부러지는 활’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호이트와 야마하가 활이 부러지는 문제를 빨리 해결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겁니다.  

운이라기보다는 윈엔윈의 활이 더 좋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호이트는 그때까지 주력으로 쓰던 소재가 알루미늄이었고, 활을 개발하던 맴버들도 알루미늄이 전문인 기계공학자들이었습니다. 야마하의 경우에는 카본을 다루는 기술자들이 많았고 기술 또한 우리보다 앞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의 기능이 우리보다 떨어졌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선수 생활과 코치, 감독 등을 거치면서 경기에서 사용하는 활에 갖춰야 할 점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거기에 집중한 겁니다. 바로 ‘기능’이었죠. 

야마하가 카본 활을 개발하면서 특허를 낸 부분이 있는데, 사실은 그 특허의 아이디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어요. 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 특허 기술이 오히려 활의 안정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죠. 당시 1위 기업이던 호이트를 잡겠다고 집중 투자를 해서 만든 야마하의 회심의 작품이 실패한 겁니다. 당시에 호이트와 야마하 두 회사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 윈엔윈에게는 큰 운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윈엔윈이 제대로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운도 활용할 수 없었겠지요.   

일본 시장을 공략한 방법은 무엇이었는지요.  

일본시장에서 성장할 때는 마케팅의 성공이 뒤에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을 타깃으로 정했어요. 고등학생들이 윈엔윈의 활로 좋은 성적을 내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우리 제품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거죠. 이렇게 입소문이 나는 데는 불과 3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성인 선수나 대학부 선수들에게 접근하기보다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선입견이 적은 고등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린 것이 유효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품질과 성능입니다. 어떠한 마케팅 전략이라도 제품이 좋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어요. 우리는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서 윈엔윈의 활이 우수한 성능을 갖도록 했지요.   

새로운 도전, 위아위스 카본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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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위스 프레임과 포크는 모두 윈엔윈의 안성공장에서 수작업으로 만든다. 몰드에 집어넣기 전의 모습. 

윈엔윈이 자전거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국내 생산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저희가 활을 만들기 위해 축적해 온 20년간의 기술과 생산에 대한 노하우 덕분입니다. 

우리나라는 공산품 산업이 상당히 발전한 나라인데, 카본에 있어서는 낙후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만들던 낚싯대가 세계적으로 유명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카본으로 낚싯대를 만들던 기술이 상당했었는데, 인건비와 생산성 등의 이유로 생산지가 중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그 기술이 전부 중국업체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국내 카본 산업의 침체가 시작되었습니다. 낚싯대 이후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제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사이 우리는 활을 개발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카본과 알루미늄에 집중해 왔습니다. 알루미늄을 직접 단조, 열처리를 하고 기계가공을 통해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 회사의 사업 분야를 양궁으로 한정지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할 즈음이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정부가 자전거도로를 전국에 설치하면서 자전거를 타자는 캠페인을 활발하게 한 데 있습니다. 6년 전만 하더라도 자전거 관련 시장이 연간 20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난 5년간 성장을 거듭해서 작년의 경우 5500억 원 시장이 되었습니다. 3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지요. 가장 수혜를 입은 기업은 삼천리자전거와 참좋은레져고요. 삼천리자전거의 5년 전 매출이 300억 정도였는데, 2013년에는 1100억 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참좋은레져도 약 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니까요.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작았을 때는 시작할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있다고 해도, 국내에서 적어도 손익분기점은 넘어야 수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반 없이는 수출을 하기 어렵습니다. 국내 시장이 국내 제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이 되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스포츠용품 산업의 경우에는 우리가 만드는 활 또는 볼빅이 만드는 골프공 등을 제외한다면 거의 수입품이 점령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저희 말고도 자전거 관련 제품을 제조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시장 규모로 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스포츠 용품에서 국산이 사라진 이유는 방금 언급한 기본적인 내수 시장이 없기 때문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자전거 산업에 진출하려고 했을 때 가장 큰 핸디캡이었죠. 하지만 자전거는 그만한 시장이 되었고, 도전할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종합해보면 위아위스가 가진 카본이나 알루미늄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와 국내 자전거 시장의 성장이 핵심적인 요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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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위스의 카본 프레임이 형태를 잡게 되는 몰드. 이 안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단단하게 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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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색 또한 안성공장에서 직접 한다. 윈엔윈의 활과 같은 공간을 쓰는 유일한 작업이다. 도색 후 결함이 발견되면 수정을 거쳐 다시 도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과거의 토종 브랜드, 크럭스가 장인이 대표로 있던 회사 제품이었다고요. 

네, 장인어른의 회사였던 연안정밀은 아웃도어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텐트의 폴이 주력이었죠. 텐트 폴은 싼 것은 글라스 파이버, 비싼 것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죠. 당시 최고급 알루미늄 폴 단일품목으로 쳤을 때 연안정밀의 제품이 세계에서 매출이 가장 높았습니다. 지금도 미국 이스턴이 알루미늄 폴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스턴이 품질로는 세계최고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런 이스턴보다도 매출이 더 높을 정도였죠. 1994년 건설한 파주 공장은 46억 원이 투자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IMF를 겪으면서 주문이 70% 정도 급락했습니다. 회사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래서 자전거 부문 사업도 포기하게 된 거고요. 

참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크럭스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있었는데, 분실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대를 구했어요. 주변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인터넷 장터에 중고로 매물이 등록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구입을 했지요. 20여 년 전 출고 당시의 부품이 그대로 달려 있어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자전거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레임뿐만 아니라 포크와 시트포스트, 스템, 핸들바, 크랭크셋 등 대부분 부품을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이렇게 직접 제조한 회사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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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정밀이 만들었던 크럭스 알루미늄 산악자전거. 프레임뿐만 아니라 포크와 스템, 시스포스트 등 상당수의 부품을 직접 만들었고, 해외 브랜드의 OEM 생산도 맡았었다. 

해외 파트너들은 윈엔윈이 자전거를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기대가 크지요. 사실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서도 저는 뭔가 좀 이상한 사람이에요. 하하! 바이어 중 규모가 큰 경우 한 번 주문에 100만 달러, 1년 총 주문량이 500만 달러에 이르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호이트와도 거래를 하는 곳들이죠. 그런데, 주문 후 60일 이내에 결제를 하면 되는 호이트와 달리 우리는 늘 현금 선결제만을 요구했습니다. 윈엔윈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요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에는 그렇게 못 하겠다고 했죠. 지금은 전 세계 80개 거래처에서 모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이렇게까지 강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윈엔윈이 자전거를 만든다고 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스포츠용품은 브랜드의 인지도와 역사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윈엔윈은 설립 20년 만에 100년이 넘은 회사와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카본으로 제품을 만들면 제작시간이 제법 소요되고, 노동력도 많이 필요합니다. 카본 자전거의 경우 제작시간 때문에 중국공장에서의 납기가 늦어지는 일이 잦고, 제품이 시장에 늦게 공급되면서 시장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활은 어떻습니까.  

지금 윈엔윈의 전 세계 점유율이 40~50%에 달합니다. 카본 활도 카본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품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2주이고, 보통은 3주 정도거든요. 활은 한 가지 모델이라면, 길이가 3가지가 있습니다. 자전거 프레임의 사이즈와 같은 개념이죠. 그런데, 또 다른 점이라면 활의 세기가 다시 12~13가지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모델이라도 40개 가까운 각기 다른 활이 나온다는 거죠. 

주문이 들어온 후 이런 각기 다른 활들을 동시에 생산해서 납품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해결했습니다. 야마하와 호이트는 미처 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의 공정이 궁금했나 봅니다. 호이트가 우리 회사를 두 번 방문해서 공정을 살펴봤고, 야마하도 한 번 견학을 왔었습니다. 

호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활이 부러지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활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죠. 활은 가운데 손잡이를 기준으로 위아래에 카본 날개가 달리는데, 자전거로 비유하자면 프레임에 앞뒤 바퀴가 달리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날개와 손잡이가 정확하게 정렬이 되어야 하는데, 활을 당기면 그 힘에 의해서 비틀리게 됩니다. 활을 당겼을 때도 비틀림이 없이 정확해야 하죠. 호이트는 이런 점에서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가 없는 우리 활의 제작 과정을 보고 싶어 했고 기술자들이 윈엔윈 공장을 방문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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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위스의 프레임과 포크는 윈엔윈의 ‘나노 카본 기술’이 사용됐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다음 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경쟁기업에게 공장을 공개했다는 말씀인지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땐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일단 시도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또 해보는 식으로, 맨땅에 헤딩을 하다시피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공정이었습니다. 야마하에서는 공장장이 왔었는데, 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야마하가 윈엔윈보다 더 잘 만들 텐데 무얼 보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지요. 야마하에서는 재고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더군요. 앞서 얘기한 복잡한 모델들을 어떻게 생산하고 관리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야마하는 활의 세기와 사이즈 등이 복잡해지면서 제때에 납품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건데, 특히 카본 활이 더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관리하고 있었죠. 

양궁은 유럽에서 시작된 만큼, 전통적인 제조법이 있는데 호이트와 야마하는 그걸 따랐지요. 하지만 우리는 활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고 시작한 탓에 재료부터 공법까지 모두 독특하게 완성한 겁니다. 그걸 호이트와 야마하가 눈여겨 본 거죠. 저는 호이트와 야마하가 우리보다 더 발전된 시스템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만약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호이트나 야마하에서 활 만드는 일을 배웠다면 저도 똑같이 만들고 있었을 겁니다. 

반응은 어떻던가요. 

공장을 공개한 의도 중 하나는 우리의 공정에 대한 지적을 해주면 그걸 개선해서 우리 제품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적은커녕 우리 공장과 공정을 촬영하고 질문하기 바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것들이라 신기했던 거죠.   

미국 이스턴 그룹의 짐 이스턴 회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습니다. IOC위원이면서 세계양궁협회 회장이었지요. 저는 당시 양궁 국제심판이어서, 시드니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는 심판을 했고, 태국아시안게임 등 아시아권 경기에서는 주로 심판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짐 이스턴 씨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턴은 알루미늄 제품으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야구 배트로 유명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핸들바나 휠 등의 컴포넌트로 유명하죠. 심지어 우주선의 알루미늄 부품을 제작할 정도로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스턴은 화살을 만들기도 하는데, 선수들이 쓰는 화살의 경우 100% 이스턴 제품을 쓴다고 보면 됩니다. 

이스턴과는 이렇게 인연이 많았습니다. 장인어른의 회사인 연안정밀과 라이벌 회사이기도 했지요. 이스턴에서 화살을 개발할 때, 제가 기술자문으로 5~6년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활을 만들겠다고 하니, 이스턴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왜냐하면 호이트가 바로 이스턴 산하의 회사였거든요. 

짐 이스턴 씨가 우리 회사를 두 번 방문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번 돌아보는 정도였고, 두 번째는 기술자들을 대동하고 왔습니다.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제 고생은 끝이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의 뜻은 비슷하잖습니까. 윈엔윈을 이스턴이 인수하고 나면, 윈엔윈은 호이트의 하위 브랜드로서 중저가의 제품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었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나 봅니다. 하하하. 그때 회사를 팔고, 급여를 받으며 지내고 있으면 몸은 참 편했을 텐데 말이죠.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기술이 대단하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이후 야마하의 카본 설비들을 인수하면서 우리와는 격차가 있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죠. 카본을 다루는 기술은 정말 뛰어났는데, 카본으로 활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제품을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죠. 선수들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호이트와 야마하는 왜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요.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꼬집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핵심을 잡지 못한 거죠. 자전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선수들이 타고 이길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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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위스의 프레임이 완성차로 조립되는 곳. 

한국에서 카본 자전거를 만든다. 멋진 일입니다만 기업에서 생각해야 하는 제조 코스트 부분에서는 상당한 부담일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그것도 카본으로 만든다고 하면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요즘 같이 생산 비용을 이유로 선진국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중국 또는 대만에서 자전거를 생산하는 때에,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만들어서 경쟁하겠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삼천리자전거나 알톤스포츠도 이미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죠. 알톤스포츠는 자사 소유의 중국공장에서 직접 만들고 있지만 삼천리자전거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OEM으로 공급받아 오니까요. 이렇듯 현재 자전거업체들이 국내에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은, 국내에서 만들어서는 사업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건비를 예로 들겠습니다. 중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중국보다 훨씬 높다는 대만과 비교를 해도 우리나라가 1.5배 이상 더 듭니다. 인건비 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가격경쟁은 중국제품은 차치하고 대만제품과도 할 수가 없습니다. 품질 경쟁 외에는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메이드 인 이태리,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재팬 제품과 경쟁해야 하죠. 활을 개발해온 과정에 많은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는 ‘돈을 벌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기술축적이 되었죠. 

비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여전히 국내 생산은 경쟁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통구조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는 것이죠. 그래야만 제조 코스트가 높은 위아위스의 자전거를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그리고 시장 경쟁력이 있는 가격으로 판매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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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도전과 달성을 반복해 온 윈엔윈의 박경래 대표. 활과 함께 윈엔윈의 이름을 알릴 다음 도전 대상은 자전거로 정했다.  

1부는 박경래 대표가 윈엔윈을 설립하게 된 배경과 성공의 뒷이야기 그리고 카본 자전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다뤘다. 2부에서는 위아위스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나노카본 이야기와 카본 프레임의 제작과정을 구체적인 사진을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위아위스 www.wiawis.com ☎1661-8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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