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이클계가 해외무대로의 진출을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로드레이스에 국한되었고, MTB계는 다소 움츠러든 상황이다. 그런데 올해 이런 국내 MTB계에 희망 같은 소식을 전한 인물이 있다. 바로 MTB 크로스컨트리 선수인 나상훈(29, 팀 엘파마-칼비숑 VTT)이다.
지난해부터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나상훈은 그가 꿈에 그리던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 진출한 것은 물론 올해 전국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내주요경기까지 병행하는 강행군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MTB를 시작한 나상훈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본격적인 엘리트경기에 출전했다. 2003년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래 해외활동을 하던 시기 몇 해를 제외하고 올해까지 10여 년 간 MTB XC 국가대표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유럽의 클럽 팀과 계약해 본격적인 유럽활동을 하며 월드컵시리즈에 출전하는가 하면 국내 시즌 주요경기까지 소화하는 그야말로 강행군을 벌였다. 유럽에서 돌아와서는 전국체전 금메달을 거머쥐고 어느새 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열린 MTB 스테이지레이스에 출전해 종합 12위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바쁜 한 해였건만 시즌오프가 돼서도 동계훈련과 자기계발의 채찍을 늦추지 않는 아름다운 국가대표 나상훈. 그가 말하는 MTB와 꿈에 대해 들어보자.
“더 빨리, 더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올해 국내외로 엄청난 강행군을 하고 있다. 올해 참가한 대회들과 근황에 대해 말해 달라.
올해는 내가 유럽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다.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UCI시리즈 대회에 참가했고, 프랑스 지역클럽 팀인 칼비숑과 계약해 프랑스 시리즈는 물론, 월드컵시리즈까지 출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올해 6월 공식적으로 유부남이 됐으며 한 가정의 가장,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더 빨리,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에 해외경기에서 친분을 맺었다는 일본 선수에게 일본진출을 문의했다. 그러나 친구는 뜻밖에 자신이 꿈에서나 그리던 월드컵무대로 가라고 조언했다.
나 선수의 유럽 활동, 반가우면서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유럽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지만 내겐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6년 해외경기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기위해 1년간 일본유학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재팬시리즈에 출전했다. 2010년에는 호주에 머물며 현지에서 열리는 시즌경기들을 치르기도 했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시즌이 반대라 국내시즌 경기를 모두 마치고 활동할 수 있어 동계훈련으로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몇 년간 외국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선수들과 교류의 폭이 넓어졌고 해외 대회진출에 대한 갈증은 더해 갔다.
그러던 중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발전을 치루며 국제대회에 발맞춘 더 발전된 경기에 진출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더 빠른 무대에서 경기를 하고 싶었다. 더 발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일본 진출을 결심하고 친분이 있던 일본의 야마모토 코헤이(28) 선수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상훈, 월드컵에 가자.”
야마모토 코헤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만 일본 친구 말 한 마디에 유럽무대로 나섰다는 말인가?
그 보다는 마음이 맞았다는 말이 적절한 것 같다. 사실 코헤이는 벌써 4년 전부터 유럽에 진출해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2시즌을 UCI랭킹 23위로 마감할 만큼 뛰어난 선수다. 그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어 국내에서 지도해주시는 장해석 감독님과 하승일 코치님에게 상의해 월드컵을 목표로 유럽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세계선수권, 월드컵 코스는 클래스1, 2와는 차원이 달라요”
유럽활동도 코헤이 선수와 함께 한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회에 출전했나?
유럽 첫 무대는 올해가 아니라 2011년 2월이다. 야마모토 코헤이와 그의 친형 카지히로와 함께 터키 남쪽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러스(Cyprus)에서 열린 선샤인컵에 출전했다. 키프러스 선샤인컵은 하루짜리 UCI 클래스 1 경기를 치르고 일주일 뒤 사흘짜리 스테이지레이스를 한다. 그 대회 스테이지 1, 2에서 44위, 62위를 했다. 그 뒤 카지히로와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매주 UCI포인트가 걸려있는 대회를 따라 다녔다. 프랑스는 물론 포르투칼,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개국 정도 다녔던 것 같다.
“작년 스위스 세계선수권대회였어요. 코스부터 포스가 남달랐습니다. 클래스1, 2하고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연습 때조차 단번에 탈 수 없는 코스였어요.”
해외경기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라면 어떤 대회인가?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스위스 샴페리)에 처음 출전했다. UCI대회는 하루짜리 대회의 경우 클래스별로 클래스1, 2, 3가 있고 최고등급인 HC가 있다(註: MTB 스테이지레이스의 경우는 클래스1, 2까지 있고 최고등급은 SHC로 표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선수권대회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코스로 구성된다. 정말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의 코스는 클래스 1, 2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회 일주일 전에 현지에 도착해서 말로만 듣던 세계선수권대회의 코스를 접했는데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코스환경에 무척 당황했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리막은 우리나라 다운힐 경기 수준이고 코스를 완주하려면 드롭 같은 기술은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어야 한다. 당시 더 당황스러웠던 건 100m에 가까운 굵은 나무뿌리에 보슬비까지 내리는 상황. 한 마디로 내 생애 최악의 코스였다. 결국 연습 중 부상을 당했는데 본 경기에서 몸싸움이 심해서 마이너스랩(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XC경기의 “80%규정”에 의해 예외적으로 경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 경기종료 시 해당선수가 마지막 바퀴를 돌고 있어야 하고 레이스리더의 첫 랩타임을 기준으로 80%이내에 있었다면 예외적으로 순위를 부여하는 규정.)으로 경기를 마쳤다.
“해외 선수와 체력이 다르다고? 아니, 환경이 다를 뿐”
올해는 프랑스 지역 팀인 칼비숑(Calvisson)과 계약해 소속선수로 활동한 것으로 안다. 칼비숑 입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굳이 표현하면 ‘우연’이다. 앞서 말한 대로 지난해는 프랑스를 근거지로 닥치는 대로 UCI대회를 뛰었다. 잘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 현지 경기관계자의 눈에 띈 것 같다. 내게 직접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대회 주최 측에 의뢰해 한국의 하승일 코치님에게 연락이 갔다. 칼비숑은 지자체 후원을 받는 작은 클럽 팀으로 내게 넉넉한 지원은 하지 못하지만 숙소만 스스로 해결한다면 대회출전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비록 큰 연봉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타국에서 맨 손으로 우물을 파던 나에게 현지 팀의 매니지먼트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하승일 코치님이 팀 매니저인 올리비에와 입단 협의를 했다. 난 칼비숑 유니폼을 입되 한국 스폰서(엘파마)를 병기하고 타고 있던 엘파마 자전거를 그대로 이용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는데 칼비숑에서 이를 받아들여서 계약하게 됐다.
칼비숑(Calvisson)은 프랑스 남부의 코뮌(Commune, 프랑스의 5가지 행정구역단위 중 마지막 단위)으로 면적 28.97평방킬로미터, 인구 4588명의 작은 지자체다. 나상훈은 이 지자체 팀소속으로 유럽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그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칼비숑 팀 단체사진.
칼비숑 팀은 스캇의 자전거를 타지만 그는 입단 시 국내스폰서인 엘파마를 유니폼에 넣어줄 것과 엘파마의 자전거를 그대로 이용하는 조건을 계약서에 추가했다.
칼비숑 입단 후 팀을 위해 이룬 업적, 그리고 개인적인 성과가 있다면?
글쎄, 좀 거창하게 들린다. 칼비숑 팀은 내가 입단하기 전까지 UCI시리즈를 전문적으로 뛸 선수가 없었다. 올해 팀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월드컵시리즈를 출전한 선수다. 월드컵 외에도 프랑스컵에 출전해 38위를 했고 프랑스 남부도시인 아를 슈르 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우승해 칼비숑 지역신문에 실리도 했다. 큰 성적은 아니지만 팀은 내가 이룬 성적을 바탕으로 칼비숑 정부에 선수영입과 추가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었고, 내년에는 나 이외에도 엘리트선수를 두 명 더 영입할 계획이다.
개인적인 성과? 스스로 생각하기에 타국에서 선수활동을 하며 가장 위험한 것을 꼽으라면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두렵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보인다.
처음 월드컵에서의 랩타임만 비교하더라도 올해는 작은 차이나마 빨라졌고 예전이라면 완주는 꿈도 못 꿀 코스를 ‘아! 아깝게 30초차로 골인을 못 했구나’하고 아까워하게 됐다.
체력만 보더라도 2011년은 매주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 무리라고 느꼈는데 올해는 큰 무리가 없었다. 올해 개인적인 성과라면 스스로에게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칼비숑 지역신문에 나상훈의 지역대회 우승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며 팀 선수 중 유일하게 월드컵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고.
‘체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떤가, 정말 해외선수와 체력 때문에 경쟁이 안 되는 것인가?
(웃음)난 한 번도 체력의 격차가 커서, 체격이나 키가 작아서 경쟁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단지 환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스위스에 시합을 갔을 때다. 알프스 근처였는데 그 곳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고 놀더라.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곳이 어디인가. 한참을 내려가고 또 한참을 올라가야하는 알프스 아닌가. 게다가 유럽은 어디를 가든 매주 자전거경기가 있다. MTB도 예외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선수들도 엄마, 아빠, 선배들 따라서 대회에 나가고 잘 탄다는 소리 좀 듣다가 어느새 상급자가 된 것 아닌가. 마찬가지인 것이다. 외국선수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험준한 환경에서 커서 자연스럽게 그 환경에 적응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 선수도 좀 더 일찍 그런 환경을 만난다면 그만큼 더 자연스럽게 환경에 적응할 것이라고 본다. 체력이 아니라 환경과 그 환경에 적응하는 문제다.
“성원해준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수 되고파”
올해 그렇게 바쁘게 해외활동을 했으면서 결혼도 하고 아빠까지 된 걸로 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기분 어떤가?
결혼은 한참 전에 양가에서 허락한 상태였는데 유럽활동을 준비하며 시기를 못 잡다가 올해 초 우선 살림만 합쳤다. 그러다 시즌 중에 잠깐 입국해서 6월에 결혼식을 했다. 다들 어떻게 큰일을 치렀냐고 하는데 우선 마음먹으니 되더라.
가장이 된 소감을 말하라는 것 같은데 그런 감회를 느낀 건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결혼 1주일 후 다시 프랑스로 가서 시즌을 보냈고 돌아오자마자 전국체전 준비로 훈련에 몰두했다. 그리고 전국체전 직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스테이지레이스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집에서 지낸 건 이제 3주 정도다. 연중 대부분을 떨어져 지내 미안한 마음에 시즌오프 후 휴식기 동안 가급적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올해 내게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아이다. 집에 오니 아기에게 모든 스케줄이 맞춰진 것 같다. 가끔 아기돌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지금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들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가족이 주는 의미가 새롭다. 아내와 아이를 보면서 ‘이게 내가 살아가는 기쁨이구나. 내가 운동을 하는 목적이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다.
인터뷰 중 에스프레소 한 잔을 청해 마실 만큼 커피의 풍미도 유러피언 스타일을 선호하는 그는 결혼생활과 백일을 앞둔 아기 이야기를 묻자 쑥스러운 표정이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않는다.
유럽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선수활동을 하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클 텐데 어떻게 해결하나?
국내의 후원자들이 도와주고 있다. 칼비숑 팀 입단 전에는 거의 비행기 삯부터 현지 체류비까지 일일이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대회와 관련해서는 팀에서 교통편과 숙소 등을 예약해주고, 필요하면 사람을 동행시켜주기도 한다. 또한 숙소를 제외하고 기본적인 일상편의를 봐주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도 직접적인 경제지원이 아니라도 비행기 편을 예약해 준다던지 현지 생활을 살펴주는 등 물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 유럽에서 활동할 때는 모든 대회 일정부터 교통편 예약에 이르기까지 하승일 코치님과 후원자들이 도와줬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코치님이 전화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라면 그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정말 교통편이 예약되어 있고 숙소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내가 간 곳이나 출전했던 대회를 잘 기억 못하는 편이다(웃음).
후원자들과는 연말모임에서 1년에 한 번 만나는데 내 작은 바람이라면 내 선수생활 동안 그 분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2013년 시즌을 위한 나상훈의 준비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내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입상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목표다. 또, 월드컵 무대에서도 올해 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조금 더 나아지긴 했지만 갈 길이 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월드컵 경기를 완주하는 것이 내년 목표일 것이다. 나약한 소리를 한다고 조롱할지 몰라도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그렇다. 내가 완주라는 목표를 정한 것은 완주를 해야 비로소 월드컵시리즈를 모두 뛸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내년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장해석 감독님의 소개로 넥센 히어로즈의 체력훈련을 맡고 있는 이지풍 트레이너와 체계적인 체력보강훈련을 하고 있다. 이지풍 트레이너도 내 후원자를 차처하고 나서 무상으로 훈련을 도와주면서 “시즌에 훈련성과로 보답하라”고 말하는 분이다. 또한 내년에 프랑스에서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프랑스어도 학원에서 수강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나상훈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고등학교 때 MTB선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는데 당시 선수로서의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선수로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선수권, 올림픽, 그 곳에서의 금메달을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현재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이면 내 선수생활의 과업으로 만족할만하다.
하지만 내 종착지는 아시아의 금메달이 아니다. 지금 내가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누가 갔던 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한국의 후원자들, 친구들, 팀 FDR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갈 수 없는 길이었을 것이다.
난 이 길이 나 혼자 가보고 끊어지는 길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후배들도 키워야할 것이다. 그들이 계속 징검다리처럼 이 길을 이어줬으면 한다. 그 때문이라도 발전이 있는 한 유럽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간 길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걸 간절히 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간절함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것이 내 최종목표다.
이런 꿈같은 말을 하면 누군가 “넌 왜 너의 미래나 은퇴 후를 진지하게 걱정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오늘 내가 행복했다면 그 때는 그 때의 행복이 기다리지 않겠는가.
“저는 제가 간 길이 저만 가보고 끊기는 길이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 후배, 또 그 후배로 징검다리처럼 이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위치가 제 최종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