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동옥
자이언트 본사의 도로용 자전거 매니저 닉슨 황(Nixon Huang)은 이탈리아에서 연이어 실시하고 있는 신제품 발표마다 기자들과 함께 테스트 라이드를 하느라 조금은 피곤한 모습이었다. 거의 매일 이탈리안 알프스의 산들을 자이언트의 신형 로드바이크 또는 산악자전거로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자이언트에 입사한 후 2015년까지 엔지니어로 일한 그는 처음에는 로드바이크와 산악자전거를 구분하지 않고 개발하다가 크로스컨트리용 풀 서스펜션인 앤썸의 1세대 모델을 마지막으로 산악자전거 개발업무를 마치고, 2006년부터는 로드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닉슨 황은 자이언트의 도로용 자전거 매니저로서, 레이스 바이크인 프로펠과 TCR 그리고 타임트라이얼용인 트리니티, 인듀어런스 자전거인 디파이 등의 개발을 지휘하고 있으며, 올해는 트리니티와 디파이 그리고 사이클로크로스용 자전거인 TCX의 신모델을 선보인 바 있다. 진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와 함께 그에게 디파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디파이는 어떤 자전거입니까.
디파이는 퍼포먼스 로드바이크입니다. 흔히들 승차감이 좋은 인듀어런스 자전거를 비포장도로도 달리는 그래블 자전거와 혼돈하기도 하는데요, 디파이는 분명한 로드바이크입니다. 그것도 빠르고 성능이 좋은 퍼포먼스 로드바이크죠. 하루 종일 안장에 올라 있거나, 거친 지형이 있는 곳으로의 모험 라이딩 그리고 그란폰도는 라이더에게 많은 피로를 줍니다. 이럴 때 라이딩 품질이 좋은 자전거가 제격이고 디파이가 개발된 이유가 여기 있지요. 유연함이 떨어지거나 상체를 조금 세워서 타고 싶은 라이더에게도 적격입니다.
-신형 디파이의 외형이 구형과 비슷합니다.
과거의 디파이에서 이미 훌륭하게 완성된 부분은 계승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포크와 스테이, 시트포스트 같은 부분이죠. 그렇다고 그대로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외형은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성능이 높은 부분도 개선하는 동시에 다른 부분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서 ‘주행 품질’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성능이 크게 향상된 부분이 바로 D퓨즈 핸들바겠군요.
맞습니다. D퓨즈 핸들바에는 자이언트 엔지니어들의 많은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자원, 에너지가 소비됐죠. 승차감과 강성 중 하나를 골라서 특화시키는 작업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성이 높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특히 핸들바의 경우 그렇습니다. D퓨즈 시트포스트를 개발할 때보다 더 어려웠어요.
–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D퓨즈 시트포스트부터 이야기해야겠군요. 사이클로크로스 자전거인 TCX에 처음 적용된 D퓨즈 시트포스트는 자전거 전체의 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라이더의 신체 한 부분에 피로도가 확실하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엉덩이죠. 장거리 라이딩 시 라이더는 자신의 체중과 지면에서 오는 진동과 충격으로 인해 엉덩이에 피로가 쌓이게 됩니다. TCX 이후 디파이에도 쓰인 D퓨즈 시트포스트는 장시간 라이딩을 해도 엉덩이가 덜 아프고, 피로 누적 또한 확실히 적게 나타나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른 부분에도 적용해 보는 게 어떨까? 라는 의견이 나왔고 이를 실현한 것이 D퓨즈 핸들바입니다.
핸들바는 자전거의 스티어링 휠입니다. 너무 부드럽다면 도로에서 오는 피드백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시트포스트에 쓰였을 때보다 움직임을 제한적으로 설정해야 했습니다. 노면에서 오는 충격에는 반응하되, 스프린트 또는 핸들바를 당기면서 긴 힐클라임할 때 핸들바가 움직여서 불안정해지기 않게끔 말이에요. 누구도 핸들바가 위아래로 요동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퍼포먼스 로드바이크는 날카로운 코너링 성능과 안정된 제동성능을 가져야 하는데, 휘청거리는 핸들바라면 곤란하죠. D퓨즈 핸들바는 한 방향으로 약간의 움직임을 보일 뿐이지만, 장거리 라이딩 또는 험한 노면을 지날 때는 큰 도움이 됩니다. ‘D자의 마법’이죠.
D퓨즈 핸들바는 카본과 알루미늄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단면의 모양이 많이 다릅니다. 소재의 특성이 달라서입니다. 하지만 편안함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핸들바의 아래쪽으로는 부드럽게 움직이면서도 위로는 단단하게 버텨서 스프린트 긴 업힐에서 휘청거림이 없도록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스프린트를 할 때는 핸들바를 위가 아니라 후방 약 30도 방향으로 당기게 됩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위와 아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 D퓨즈 핸들바를 다른 자전거에도 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핸들바의 전체가 D 형태가 아니거든요. 스템에 고정되는 부분은 원형이기 때문에 다른 스템 그리고 다른 자전거에도 쓸 수 있습니다. 핸들바 교체만으로도 피로도가 상당히 줄어들 거예요. 반대로 어떤 특정한 이유로 다른 핸들바를 디파이에 달아야 한다면 그 또한 아무 문제가 없고요.
-자이언트는 대만과 중국, 유럽 등 여러 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북미나 유럽의 많은 브랜드들이 자사의 공장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제조사’인 자이언트만의 이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일까요?
-한국에서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달린 로드바이크의 보급이 느린 편입니다. 신형 디파이도 디스크 브레이크로만 출시되는데요.
산악자전거 문화가 오래되고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로드 디스크가 빠르게 정착되었습니다. 숍과 소비자 모두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악자전거를 생각해 보면 20여 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논란이 많았지만 디스크 브레이크의 가격이 내려가고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급속히 대중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림 브레이크를 쓰는 산악자전거를 찾아 볼 수 없어요. 로드바이크도 그렇게 될 겁니다.
자이언트는 디스크 브레이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초대 디파이를 선보였을 때 자전거 업계에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는데, 이유는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으로 나오는 자전거가 그리 많지 않은데, 4년 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전체 라인업이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로만 이루어진 첫 번째 로드바이크였고, UCI의 디스크 브레이크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해 버렸죠. 자이언트는 미래의 로드바이크에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당연할 것이라 판단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동차나 모터사이클 레이스처럼 속도를 다투는 경기는 브레이크가 생명입니다. 자전거 또한 마찬가지예요. 디스크 브레이크가 림 브레이크보다 훨씬 더 나은 시스템이고, 심지어 림의 수명과 성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안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림 브레이크가 로드바이크에서 사라지는 것을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곧’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소비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를 겁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사이클링에 있어서 시장을 선도하기보다는 유럽과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산악자전거는 북미를, 로드바이크는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지요. 유럽과 미국은 이미 로드 디스크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파쏘 가비아에서 테스트 라이드를 하고 나니, 디파이에 장착된 타이어에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가비아라는 이름을 타이어에 붙였나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이탈리아 고갯길의 이름을 붙이려면 그에 맞는 성능을 내야 하겠죠. ‘가비아’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디파이는 어드밴스 프로 등급이 최고사양인데, 더 가벼운 어드밴스 SL 등급의 생산계획은 없습니까?
자이언트의 어드밴스 SL 등급은 프로투어와 클래식 경기에서 요구되는 강성과 무게를 가진 자전거입니다. 신형 디파이는 프로 레이스가 아닌 현실에 맞춰 개발했습니다. 대부분의 라이더들이 하고 있는 그런 라이딩 말입니다. 주말에 장거리를 떠나거나 높은 산을 오르고, 그란폰도에 출전하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디파이는 자이언트 자전거 라인업 중 베스트셀러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점을 고루 갖춘 자전거예요. SL 등급은 프로들이 원하는 자전거고요. 만약 프로 선수들이 어드밴스 SL 등급의 디파이를 원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 디파이는 현실의 소비자를 위한 자전거입니다. 가격 또한 마찬가지예요. 디파이의 최상급 모델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의 미국 가격은 5300달러입니다. 고성능 자전거에 대해 알고 있는 라이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죠. 하지만 SL 등급이 되면 거의 2배의 가격표를 달게 됩니다. 직업이 아니라 여가를 위해 즐기기 위한 투자로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디파이에 장착된 자이언트 파워미터의 파급력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파워프로 파워미터를 개발하는데 5년이 걸렸는데, 파워미터를 만드는 외부업체들과의 협업 없이 자이언트만의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첫 해에는 디파이를 포함한 일부 모델에만 장착이 될 겁니다. 애프터마켓용으로 쓰기에는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거든요. 자이언트는 소비자들이 파워미터를 쓰기 위해서 들이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드 라이더들에게 정말 유용한 장비인 파워미터는 라이딩을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죠. 머지않아 파워미터가 퍼포먼스 로드바이크의 표준 장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워미터를 기본 장착하면서도 가격을 과도하게 높이지 않는 것’ 바로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고, 파워프로는 자이언트의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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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왓] 한동옥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