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한성
창업과 성공 스토리는 물론이거니와 사이클리스트 중심의 스토리텔링, 참신한 커뮤니티 네트웍크에 이르기까지 라파는 사이클리스트들에게 흥미로운 브랜드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쌓아두고 있었던 차, 라파의 창업자이자 CEO인 사이먼 모트램(Simon Mottram)이 지난 해 12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기자가 서울 가로수길에 위치한 라파 서울을 찾았을 때, 사이먼 모트램은 RCC 회원들과 함께 남산, 북악 스카이웨이를 엮은 코스를 한 차례 라이딩한 후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바이크왓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이클 의류 브랜드인 라파의 창업자이자 CEO인 사이먼 모트램이라고 합니다. 라파는 제가 2003년 영국에 설립한 브랜드로, 아직 14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 사이클 의류 업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입니다.
어떤 계기로 라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까?
15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브랜드마다 사이클 의류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려 했었죠. 어느 브랜드건 커다란 로고를 박고 화려한 색상의 디자인을 사용했어요. 프로 선수들이 입는 의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엠블럼이나 로고를 넣은, 눈에 띄는 화려한 컬러의 제품들이 유행이었죠.
전 다른 스포츠보다 사이클 의류가 촌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잡한 면도 있었고요. 평소에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당시 유행하는 의류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라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라파 창업 이전부터 의류 산업에 종사했던 건가요.
아닙니다. 사실 옷 만드는 방법은 아예 몰랐습니다. 게다가 전에 다니던 직장도 자전거 또는 의류와 전혀 관계없는 분야였죠. 그래서 의류 브랜드를 설립하고자 했을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았거든요. 그래서 남보다 더 열심히 의류 제작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했죠. 사이클링 의류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들은 물론 일상복에 대한 지식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역사에 관한 서적을 읽거나 나라별로 유명한 코스, 일화들을 찾아내고 답사하는 등 자전거에 대해 전반적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렇게 절 스스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다른 운동보다 사이클링이 사람 냄새가 짙은 스포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선수들이 자전거에 올라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해왔던 방법들이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다리털을 면도하는 것 혹은 이탈리아 선수들이 담배를 일부터 피우기도 한 일화가 기억에 남네요. 이렇게 사이클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매력적이기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새로운 것에 빠져들고 알아가는 재미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더 나은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까.
시중에 나온 여러 브랜드들의 옷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아소스가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제가 원해서 입고 싶은 의류는 드물었습니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네요. 제 머릿속엔 화려하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사이클링 의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던 영감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사이클링 의류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죠. 사무실에서 밤낮으로 옷 만드는데 열중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대단한 걸 만들자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당시의 업계에선 찾을 수 없던, 튀지 않으면서 세련된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파의 시작을 알린 제품은 뭔가요?
바로 라파 클래식 저지입니다. 시장에 첫 선을 보이자마자 정말 불티나게 팔렸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에게 라파를 알리게 된 효자상품입니다.
라파 클래식 저지는 메리노울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당시 사이클 의류 원단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던 소재였죠.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메리노울은 부드러운 촉감을 주면서 땀을 잘 마르게 해 활용도가 넓습니다. 이런 원단의 특징을 살리면서 디자인적인 측면으로는 검은 바탕에 흰 띠로 팔뚝에 포인트를 준 점이 인기를 끈 요인입니다. 화려한 색상이 주류였던 사이클링 의류 시장에서 라파 클래식 저지는 그런 화려함과 반대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제품으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저지는 지금도 출시되는데요. BMW의 자동차처럼 제품의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되 디테일은 변화시키면서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에 대해서 묻는다면 곧바로 ‘아, 라파 클래식 저지!’를 생각나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한 계기가 있다면요.
라파의 본거지인 런던은 사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가 아닙니다. 교통량이 많고, 길도 좁으며 교차로도 복잡하기 때문이죠.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발전된 나라들에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호주 멜버른, 이탈리아 밀라노, 덴마크 코펜하겐 같이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곳에서 라파를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도시에 해외 지사를 둔 것이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죠.
런던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수하면서 각국의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요소들을 제품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라이더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찾고 있다는 겁니다.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옷을 만들고 싶었죠.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기능면에서 소비자들이 충족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크게 보자면 레이스, 사람, 이야기 이 3가지에서 시작됩니다. 라파에는 8명의 디자이너가 있는데요. 디자인에 관련 부서만 15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와 팀원들은 디자인 컨셉을 선정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영감이 제품에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궁금할 겁니다. 그래서 라파는 제품 레이블마다 스토리를 적어놨습니다. 왜 이런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지 또는 왜 이 제품이 특별한지 그 이유를 짧은 스토리로 전달하면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죠.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을 충족시켰다면 레이블에 담겨진 스토리로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었습니다.
라파와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와 유사한 스타일의 의류가 시중에 많이 보입니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정말 똑같이 카피된 제품도 종종 보이더라고요. 라파 입장에서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트렌드 리더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지만 타 브랜드에서 라파와 흡사한 제품이나 아이템들을 내놓는다는 건 우리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런 흐름이 곧 사이클링 의류 업계에서 리더라는 걸 반영하죠.
의류 브랜드는 특성상 유행하는 스타일 그리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두 가지 방면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데, 트렌드 리더의 강점이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카피하는 것보다는 카피 당하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라파만의 특징이라면 RCC가 빠질 수 없겠는데요.
그렇습니다. 라파의 웹사이트 주소는 ‘rapha.cc’입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해외지사 웹사이트 주소로 ‘.uk’, ‘co.kr’, ‘.us’ 등등 국가코드가 사용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라파는 처음부터 ‘.cc’를 사용했습니다. 지사도 같은 주소를 사용하죠.
‘.cc’는 ‘Cycling Club’의 약자입니다. 런던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 웹사이트 주소처럼 사이클링 클럽이라는 컨셉으로 매장을 꾸몄습니다. 제품 판매뿐만 아니라 라이더들이 모여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장소, 라이딩을 시작하거나 마치기 위해 모이는 장소로 여겨지길 원했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이 사이클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창출하고 싶었습니다.
매장을 자주 오고가는 라이더들을 위해서는 ‘Rapha Cycling Club(RCC)’ 회원제도를 만들기로 했죠. RCC는 유료 커뮤니티로 연회비를 지불하고 등록하게 되면 회원에게 고유번호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RCC 회원들만 구입할 수 있는 의류 라인이 제공되며 자전거 대여서비스, 커피 제공, 잡지(몬디올, Mondial)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죠,
RCC를 운영한지 2년이 되었는데요. 현재 13개의 지사에 등록된 RCC 회원이 약 9000명(2016년 12월 기준)입니다. RCC를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RCC에 가입하는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브래들리 위긴스나 팀 스카이의 후원사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향후 스폰서십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 후원 중인 팀으로는 캐년-스램과 팀 위긴스가 있습니다. 팀 스카이 스폰서십은 2016년 말에 종료됐어요. 이렇게 팀 단위로 후원하는 것 외에 선수 개개인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제품이 퍼포먼스에도 탁월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선수들을 후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겁니다. 물론 라파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함도 있고요.
독자들은 UCI 월드 팀에 대한 후원 규모가 궁금할 겁니다. 팀 스카이 스폰서십에 대해서 얘기해 드리죠. 1년 동안 한 선수 당 약 800개의 제품이 전달됩니다. 라파의 거의 전 제품을 후원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상당하죠. 사이클링 의류의 경우 전부 선수 몸에 맞도록 커스텀 작업을 필수로 거칩니다. 팀 스카이가 30명 가깝다는 걸 감안한다면 저희로서는 정말 큰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팀 스카이를 후원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봐야 할까요? 당분간의 후원 계획은 현재 계약된 팀 외에 추가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팀 스카이를 후원하면서 얻은 점이 있다면요.
4년 간 팀 스카이를 후원하면서 라파가 얻은 대가는 점은 세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술적인 측면이 강화된 점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자전거 제조사들이 공기역학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개발을 하며 신제품 내놨기 때문에, 의류 업체인 우리도 그 흐름에 맞춰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죠. 이전까지 라파는 공기역학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전되지는 않았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팀 스카이 선수들이 윈드터널에서 풍동실험을 할 때마다 우리 옷을 입고 연구에 임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몸에 걸치는 것을 넘어서 보다 향상된 퍼포먼스를 위해 사이클링 의류가 가져야하는 부분들을 배울 수 있었죠.
두 번째로는 선수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앞서 언급한 제품 특유의 스토리를 채워낼 수 있었던 겁니다. 단순히 옷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데에 급급하지 않고 선수들과 구매자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고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음……. 효과적인 마케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팀 스카이를 후원하면서 매출이 급상승한 건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앞으로의 라파의 행보가 궁급합니다.
설립한 이후로 정말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잘 나가는 브랜드를 보면 대부분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죠. 반면, 라파는 짧은 역사임에도 트렌드 리더라고 말할 만큼 꽤나 높은 자리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래서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지금까지 일군 것들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RCC를 운영하는데 집중한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라파를 사랑해주는 소비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RCC 회원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내실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모트램 씨에게 사이클링이란?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이클링은 제가 해본 운동 중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라파를 설립하면서 사이클링에 푹 빠지게 되었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노력과 열정을 쏟는지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걸 보고 느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던 라이더들을 만나면 그 행복한 표정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기운이 저에게 큰 에너지가 됩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성이 아름답다는 걸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열정을 배신하지 않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저도 힘차게 페달링 할 겁니다. 이렇게 흰 머리에 흰 수염이 나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