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휘종, 사진 : 멀티밴 메리다 바이킹 팀
지난 10월말 메리다의 국내 공식배급사인 오디바이크의 초청으로 두 명의 사이클링 스포츠스타가 한국을 방문했다. 호세 안토니오 에르미다 라모스(José Antonio Hermida Ramos, 스페인)와 이미 인터뷰로 소개된 군 리타 달레 플레샤(■연관기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워킹맘)다.
둘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멀티밴 메리다 바이킹팀에 소속된 동료선수라는 점, 그리고 월드챔피언십과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제패한 이들이란 점이 대표적이다.
호세 에르미다는 크로스컨트리(XC)를 주 종목으로 하는 MTB 선수다. 1996년 주니어 월드챔피언을 시작으로 2000년엔 U23(만23세 이하) 월드챔피언에 올랐고, 2002년과 2004년, 2007년엔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후 2010년엔 성인으로서 다시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
그의 나라인 스페인에선 챔피언을 일곱 차례나 지냈는데 그 기록이 조금 이채롭다. 다섯 번은 크로스컨트리지만 나머지 두 번이 사이클로크로스다. 그리고 최근엔 새로운 XC경기종목인 XCE(크로스컨트리 제외경기, Cross Country Eliminator)에도 출전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호세 에르미다를 만나 최근의 근황과 우리에게 생소한 새로운 종목들에 대해 물어봤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지난 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무척 인상적이었다. 따듯한 날씨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산악자전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행사 참석 관계로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산악자전거 분야는 발전해야할 부분이 많이 있었다. 메리다 본사가 위치한 대만의 산악자전거는 이제 꽃을 피우려는 단계다. 시작단계니 꽃보다는 새싹이란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아주 좋은 자전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시티바이크나 산악자전거 모두에서 말이다. 남한강 자전거 페스티발이나 동두천 대회 같은 자전거 행사들이 많고, 대회에 참석한 라이더들의 실력도 뛰어났다.
군 리타 달레(Gunn Rita Dahle, 노르웨이)는 11년, 랄프 나프(Ralph Näf, 스위스)는 10년, 당신은 9년째 같은 팀에 몸담아왔다. 멀티밴 메리다 바이킹 팀의 어떤 매력이 선수들을 끌어당기는가?
녹색 팀이다. 요즘은 검은색도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하하!!
아주 좋은 팀이다. 팀원들 간의 유대관계가 끈끈해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 우리는 월드컵에 참가하는 팀 중 하나로 많은 선수들이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한 가족처럼 움직이고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다. 멀티밴 메리다 팀의 지난 기록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과거 10년 이상 군 리타부터 시작해 우수한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더해져 함께 좋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것이 우리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팀 중 하나로 만드는 이유다. 지난 2년간은 성적에 난조가 있었지만 앞으로의 성적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새로운 유망주를 영입했고, 군 리타와 나도 계약을 연장할 예정이다.
(호세 에르미다와 멀티밴 메리다 바이킹 팀은 지난 11월08일 2년간 계약연장을 발표했다.)
올림픽에 4번이나 출전했고 런던에선 금메달을 기대한 팬들도 많았다. 아직까지 올림픽 금메달이 경력에 없어 개인적인 아쉬움도 클 것 같다.
레이스가 끝난 후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낙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디엄에 오르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금메달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챔피언십이나 올림픽 같은 1일 경기(One-day Race)에서 금메달을 노린다면 선두 3명 이내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 직후엔 낙담했지만 나중에 레이스를 다시 분석해본 후 그런 기분은 사라졌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포디엄에 오를 수 없는 4등은 모두가 원치 않는다. 포디엄에 가장 가깝지만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4등이어야만 하고 그날은 그게 내 자리였을 뿐이다.
크로스컨트리 선수지만 스페인 사이클로크로스 챔피언을 두 번이나 지냈고, 사이클로크로스(CX) 경기에서도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두 종목을 비교한다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종목으로 봐야한다. 타고난 후 아주 지저분한 상태가 된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다. 경기에 사용하는 자전거와 테크닉이 완전히 다르다. XC의 경기시간은 1시간30~40분 정도로 짧아졌지만, 사이클로크로스는 여전히 1시간50분 정도 걸린다.
CX가 경기시간이 길지만 코스는 오히려 짧다. 경기장은 산악자전거에 비해 훨씬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테크니컬한 부분도 적고 오르막이나 점프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산악자전거는 그런 면에서 좀 더 자연스럽다. 내가 산악자전거를 더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사이클로크로스 경기에 출전하는 이유는 훈련과 더불어 겨울 동안 레이스나 경쟁에 대한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 주 종목이자 좋아하는 것은 산악자전거다. CX는 경주용 F1자동차와 비교할 수 있다. 경기장 밖에선 쓸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사이클로크로스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적으니 여럿이 함께 즐기기도 어렵다. 하지만 산악자전거는 보다 극적이고, 도전적이다. 그런면에서 산악자전거가 내게 더 잘 맞는 스포츠다.
겨울훈련의 방법엔 많은 것들이 있을 텐데 굳이 사이클로크로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겨울 훈련으로 달리기나 수영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난 사이클로크로스를 선택한 것 뿐이다. 산악자전거 경기 시즌은 2~3월에 시작해서 10월초에 끝난다. 경쟁 없이 지내기엔 10월부터 2월까지의 기간은 좀 길다. 겨울 동안 레이스 감각을 잃지 않으려 선택한 것이 사이클로크로스였다. 2007년에 처음 사이클로크로스를 시작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엔 사이클로크로스 경기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일 년 내내 레이스에 참가한다는 것도 스트레스다. 대신 내년 시즌을 대비해 몸을 만들며 겨울을 보낼 예정이다.
사이클로크로스 경기엔 당신 같은 MTB 선수뿐 아니라 로드바이크 선수들도 많이 참가한다. 누가 더 사이클로크로스 레이스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나?
사이클로크로스 자전거는 로드바이크와 비슷하다. 타이어와 브레이크 정도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지형조건과 라이딩테크닉은 훨씬 산악자전거에 가깝다. 산악자전거 경기에 쓰는 테크닉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산악자전거 선수에게 훨씬 유리하다.
한국에도 사이클로크로스 연맹이 생겼고, 레이스도 생겨나며 저변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이클로크로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산악자전거에 비해 해 줄 조언이 그리 많지 않다. 사이클로크로스는 산악자전거보다 훨씬 배우기 쉽고, 위험도 적다. 산악자전거 경기엔 드롭이나 점프,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있다. 하지만 사이클로크로스는 훨씬 평평한 지형에서 경기를 한다.
특별한 조언이 있다면 페달링(Cadence)을 빠르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가볍고 빠르게 페달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산악자전거에선 지형에 따라 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리막이나 점프, 드롭 등에서 말이다. 하지만 사이클로크로스 경기에선 끊임없이 페달링을 해야 하므로 가벼운 페달링으로 피로를 줄이는 것이 좋다.
사이클로크로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은 체력훈련만 열심히 하는 것이다. 사이클로크로스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도 필요하지만 기술도 상당히 중요하다. 코너링에서 빨리 달리지 못한다면 절대로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올해 UCI 월드챔피언십에 XCE가 처음 등장했다. 어떤 대회인가?
XCE는 크로스컨트리 엘리미네이터(Cross Country Eliminator)의 약자로 월드컵에선 2011년부터 볼 수 있었고, UCI 월드챔피언십엔 올해 편입됐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UCI 이벤트를 통해서지만 첫 선을 보인 건 수 년 전 유럽이다. 그 후 독일과 스위스 등 몇몇 나라에서 경기가 펼쳐져 왔다.
1㎞ 미만으로 설정된 짧은 코스를 4명의 선수가 함께 달리고 그 중 순위가 높은 두 명이 다음 스테이지에 진출하는 토너먼트방식이다. (경기를 다양화 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XC 선수가 참가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선수가 등장할 것이다. 산악자전거의 초창기엔 크로스컨트리와 다운힐 두 종목만이 있었고, 몇몇 선수들은 두 종목에 모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층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엘리미네이터 경기도 마찬가지로 특화된 선수들이 등장할 거라고 본다. XCE와 XC경기에서 요구하는 특징이 서로 다르다.
나의 경우엔 XCE에도 참가하지만 중점을 두고 있는 건 크로스컨트리(XCO)다. XC가 훨씬 인기있는 종목이고 스스로 동기부여도 많이 된다.
XCE가 앞으로 XC처럼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모든 경기가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XCE 경기방식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번 월드챔피언십을 예로 들어보자. 선수들이 도심지로 자전거를 가져와 경기를 하는 방식은 좋았다. 사람들이 경기장에 가기 쉬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면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경기관람객들은 경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선수들이 집들 사이를 누비니 건물에 가려서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장의 관람객들에겐 별 이득이 없었고, TV 중계를 본 사람들만이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경기의 컨셉도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발 후 200m면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흔하다. 선수들이 일렬로 늘어선 다음 그대로 질주해 경기가 끝나버린다. 극적인 추월이나 역전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경기의 속도를 좀 늦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추월이 훨씬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지금처럼 시속 40㎞로 질주한다면 추월을 기대하기 어렵다.
29인치 바퀴를 쓰는 메리다 빅나인을 경기에 사용하고 있고, 650B 휠셋을 쓰는 자전거를 테스트 중이라 들었다. 650B와 29인치 자전거를 비교해 줄 수 있나?
새롭게 등장한 규격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자전거가 될 것 같다. 26인치 휠이 대세인 가운데 29인치가 등장했다. 그리고 650B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나와 키가 비슷한 사람(172㎝)이나 아시아인들에겐 29인치 자전거가 크고 핸들의 높이도 너무 높다. 650B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사이즈가 될 것이다. 여자들도 큰 바퀴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9인치보다는 가속이 우수하고, 26인치보다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29인치 바퀴를 쓰는 산악자전거는 매우 훌륭한 자전거지만 탈 수 있는 제한 신장이 있다. 신발을 고를 때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신발이 있어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크기가 아니라면 사지 않는다. 중간 크기의 바퀴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국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크로스컨트리는 가장 인기 있는 산악자전거 종목이다. XC 레이스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경기며, 가족들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다. 아빠가 경기에 나가면 엄마와 아이들이 응원을 한다.
자전거는 평소에 그냥 야외로 타고 나가 자연을 즐기거나 뒷산을 오를 수도 있고 일상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오늘(남한강 자전거 페스티발)처럼 그저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다. 그게 건강을 위한 투자다. 많은 사람들이 크로스컨트리를 즐기길 바란다.
호세와 함께 한국을 찾은 군 리타 달레는 호세의 마지막 말에 힘을 보탰다. 비교적 교통사고 걱정 없이 아이들이 타고 놀기 좋은 것이 XC 자전거라는 것. 호세는 많은 이들이 공원이나 숲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XC 자전거를 타며 자연을 느끼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크로스컨트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보여준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