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 스컬트라는 2006년 세상에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가볍고, 날카로운 핸들링과 편안한 승차감을 추구한 올라운드 로드바이크인 스컬트라는 데뷔 2년 후 스컬트라 에보로 진화했고, 메리다는 2012년 투입한 3세대 모델인 스컬트라 SL을 통해서 2013년 UCI 월드 투어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람프레-메리다 팀과 함께 세계 최고 레벨의 레이스를 경험하면서, 독일 마그슈타트에 위치한 메디다의 R&D센터에서는 4세대 스컬트라에 새로운 무기를 추가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공기역학성능’이다.
독일의 자전거 전문지 투어가 로드바이크를 50대를 동원해 진행한 윈드터널 테스트에서, 당시 람프레-메리다 선수들이 사용하던 리액토는 전체 2위에 오르며 뛰어난 공기역학성능을 재확인했지만, 가벼운 무게와 승차감에 집중했던 스컬트라 SL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만다. 낙제점을 받은 메리다의 엔지니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서 4세대 스컬트라에게 무게 증가가 없는 선에서 최대한의 공기역학성능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스컬트라의 가벼운 무게와 좋은 승차감 그리고 날카로운 핸들링은 유지시키면서, 공기역학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리액토에 먼저 적용한 공기역학적 형태의 튜브를 다듬어서 사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 최신 로드바이크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캄테일 튜브(비행기 날개 모양의 뒷부분을 잘라낸 형태)를 역대 스컬트라 중 처음으로 적용했는데, 이 기술은 NACA0028 에어포일 날개 형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리액토는 에어포일의 뒷부분을 잘라낸 튜브를 사용해서 공기역학성능을 극대화했는데, 스컬트라는 가볍게 만들어야 했던만큼 리액토보다 더 많은 부분을 잘라낸 튜브를 사용했다. 메리다는 이렇게 에어포일을 잘라 만든 튜빙을 NACA 패스트백이라고 부르는데, 4세대 스컬트라의 헤드튜브와 포크, 다운튜브, 시트튜브에 적용시켰다.
NACA 패스트백 튜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덕분에 4세대 스컬트라는 공기역학성능이 대폭 개선되었다. 무게는 어떨까? 원형 튜브보다 무거운 공기역학적인 형태의 튜브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무게 증가분은 최소한의 카본을 정밀하게 적층하는 방법으로 상쇄시켰다. 프레임의 각 부분에 필요한 최소한의 카본만 사용하기 위해서 카본 프리 프레그를 더 많은 조각으로 나눠서 카본과 레진이 중복되는 부분을 줄인 것.
결과는 대단했다. 월드 투어에 투입된 CF4 버전은 750g으로 완성됐는데 이는 가볍다고 평가받은 3세대 모델보다도 100g이나 더 가벼운 수치이고, 순수하게 경량화를 추구한 CF5 버전은 CF4에서 10%나 더 감량된 680g이라는 놀라운 무게를 자랑했다. 메리다는 CF5 프레임에 경량 부품을 사용해서 가장 가벼운 양산 자전거(4.56㎏)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4세대 스컬트라의 디스크 브레이크 버전을 공개했다. 프로 레이스에 디스크 브레이크가 투입되는 것에 대한 거센 찬반 논쟁이 있던 시기인데, 메리다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로드바이크의 표준이 될 것을 확신했고, 그 해 파리-루베부터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된 로드바이크를 실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 메리다는 스컬트라 디스크를 통해서 체중이 무거운 라이더가 공격적인 제동을 반복하거나 10㎞ 이상인 긴 내리막에서 자주 발생하는 캘리퍼의 과열을 막아주는 디스크 쿨러를 선보였고, 이후 등장한 로드바이크에도 적용을 이어갔다.
4세대 스컬트라는 람프레-메리다 팀을 거쳐 바레인-메리다(현재 바레인 빅토리어스)의 레이스 자전거로 다년 간 프로 무대에서 활약했고, 좋은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 높은 강성을 갖춘 합리적인 가격대의 로드바이크로 대표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4세대 스컬트라를 통해서 월드 투어에서의 경쟁력을 자신한 메리다는 5세대 모델을 개발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다시 세웠다. 스컬트라의 상징인 가벼운 무게 달성은 당연한 것이고, 공기역학성능 또한 4세대 모델보다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장거리를 달릴 때 라이더의 피로를 줄여서 더 강한 퍼포먼스를 레이스 후반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승차감을 향상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편안한 승차감을 통해서 피로가 누적되는 것을 줄이고, 뛰어난 공기역학성능을 통해서 파워를 아끼며 달리는 경량 올라운드 로드바이크가 메리다의 엔지니어들이 생각한 5세대 스컬트라의 모습이다.
공기역학성능 개선을 위해서 신형 스컬트라에는 한 해 먼저 선보인 4세대 리액토에 사용된 에어로 디자인이 차용됐다. 극한의 공기역학성능을 추구한 리액토와 유사한 헤드튜브와 포크를 사용했으며,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으로 설계하면서 외부에 노출된 모든 케이블을 숨겨 공기역학성능을 높였다. 시트스테이가 시트튜브와 만나는 지점을 아래로 내려서 공기저항을 줄이고 승차감 향상을 얻은 것도 같은 접근방법이다.
BB셸의 강성은 4세대 모델과 같은 62N/㎜이고, 포크의 측면 강성은 12.8% 증가시킨 53N/㎜로 설정해서 다운힐 그리고 코너링 시의 안정감과 조향 정밀도를 향상시켰다. 여기에 4세대 스컬트라보다 더 높은 등급의 카본을 사용하고, 효율적인 카본 적층 방법을 통해서 프레임과 포크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으로, 스컬트라 고유의 가벼운 체중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프로 펠로톤의 속도인 45㎞/h를 유지하며 달리는 상황을 재현한 윈드터널 테스트에서 신형 스컬트라는 기존 모델 대비 공기저항을 4.2%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라운드 자전거인 스컬트라에 어울리는 림 높이 45㎜인 카본 휠셋으로 테스트한 결과이며, 메리다는 약간의 무게가 증가되는 것을 감수한다면 60㎜ 휠셋을 사용했을 때 3%의 추가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에어로 바이크와 올라운드 바이크를 필요에 따라서 선택해 탈 수 있는 프로 선수들과 달리, 한 대의 자전거로 각기 다른 지형에 적응해야 하는 라이더들에게 대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오메트리는 이전 모델 대비 헤드튜브가 짧아지고 리치가 연장되었는데, 헤드튜브의 각도와 BB의 높이와 체인스테이 길이 등 핵심적인 지오메트리 수치를 4세대 리액토와 공유한다. 팀 선수들이 리액토와 스컬트라를 번갈아 탔을 때 이질감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리액토와의 지오메트리 상의 차이점은 시트튜브의 높이다. 4세대 스컬트라보다 40㎜나 짧은 시트튜브를 사용해서 그만큼 시트포스트가 길게 뽑히도록 했는데, 바로 승차감 개선을 위해서다. 프레임에 사용된 것과 같은 NACA 패스트백 타입의 에어로 시트포스트를 쓰지 않고, 27.2㎜ 원형 시트포스트를 사용한 것도 승차감 향상이 목적이다.
메리다는 경쟁이 거칠어지고 장거리 레이스일수록 승차감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고 말한다. 메리다 엔지니어들은 BB부터 안장까지의 수직 강성을 4세대 스컬트라 대비 38% 줄여서 라이더의 피로 누적을 줄였다. 사용 가능한 최대 타이어 사이즈가 28㎜에서 30㎜로 커진 것도 승차감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5세대 스컬트라는 CF5와 CF3 두 등급의 카본 프레임을 바탕으로 고성능 모델부터 가격 접근성을 높인 대중적인 모델까지 촘촘하게 구성된다. 스컬트라 10K와 팀 그리고 9000 모델에는 무게가 861g(M 사이즈)인 CF5 카본 프레임이 사용됐고, 8000과 7000, 리미티드, 5000, 4000에는 CF3(997g, M 사이즈) 카본 프레임이 쓰였다.
시승한 스컬트라 7000은 시리즈의 중간에 위치하는 모델로 파워미터를 포함한 스램 라이벌 이탭 AXS 무선 변속 구동계와 메리다 팀 SL45 카본 휠셋을 사용한다. 상위 모델인 스컬트라 팀(1200만원)과 비교하면, 절반 조금 넘는 가격에 무선 변속 구동계와 카본 휠셋, 파워미터 등의 핵심 사양을 합리적으로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일체형 카본 콕핏을 쓰는 CF5 프레임 완성차들과는 달리 CF3 카본 프레임을 쓴 스컬트라 7000은 메리다 엑스퍼트 SL 알루미늄 핸들바에 FSA ACR SMR 스템을 써서 케이블류를 프레임 안으로 삽입시킨다. 공기역학성능이 약간 희생되지만, 비용과 기능을 모두 고려한 세팅이다.
프레임과 타이어는 최대 30c 타이어를 수용할 수 있고, 메리다는 팀 45 SL(림 내부 폭 19㎜) 카본 휠셋에 컨티넨탈 GP5000 28c 타이어를 매칭시켰다. 브레이크 로터는 앞뒤 160㎜이고, 48/35T 체인링에 10-36T 12단 카세트스프라켓을 조합했다. 스컬트라 7000은 건메탈 그레이와 메탈릭 블랙 두 가지 프레임 색상으로 판매되며, 사이즈는 XXS, XS, S, M, L, XL이 준비된다. S 사이즈의 실측 무게는 8.3㎏(멀티툴 포함)이고, 가격은 590만원이다.
first ride impression
“역동적인 프레임에 담긴 편안함”
차동헌(가평 사이클링팀 GPC)
나는 가벼운 자전거를 좋아한다. 파워가 높고, 트랙 경기에 강한 편이어서 의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7㎏ 이하로 가볍고 좋은 리듬으로 댄싱할 수 있으면서 힘 전달이 잘 되는 자전거를 선호한다. 그런데 무게가 그 이상이어도 주행을 시작하면 숫자보다 가볍게 느껴지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댄싱이 자연스러운 자전거가 있다. 스컬트라 7000이 그랬다.
처음 안장에 올라 자전거와 친해지기 위해서 이곳저곳 달리며 받은 느낌은 ‘편안함’이다. 28c 클린처 타이어와 림 높이 45㎜인 카본 림이 노면의 모양을 부드럽게 전달해주고, 길게 뽑힌 시트포스트의 성격이 온화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르내리고 코너를 돌아보니, 스컬트라 7000이 민첩하게 반응한다. 편안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에서 이 자전거가 추구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상위 등급 프레임 대비 카본 소재가 다르고, 무게가 약간 더 나가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설계인 경량 레이스 로드바이크다. 8.3㎏이라는 완성차 무게는 구동 부품과 핸들바, 보급형 카본 휠셋 그리고 기본으로 포함된 휴대용 공구 등을 고려하면 적당한 무게다.
댄싱으로 언덕을 오를 때의 리듬이 좋고, 높은 속도로 주행하다가 더 빠르게 가속하는 스프린트를 시도했을 때도 힘이 잘 전달된다. 페달링 파워를 1000와트 정도로 유지하면서 가속을 반복해 봤는데, 프레임이 비틀리지 않고 모든 페달링 스트로크를 제대로 받아준다. 스프린트할 때는 자전거가 가벼워야 좌우로 흔들 때 느낌이 좋은데, 스컬트라 7000의 반응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그에 비해서 메리다 팀 45 SL 카본 휠셋은 견고한 프레임과 달리 높은 파워를 견뎌내기에는 조금 버거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 중에서도 파워가 높은 편인 내 기준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스컬트라 7000의 안장에 주로 오를 중급 로드 라이더에게는 성능과 가격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없겠다.
안장 아래에 휴대용 공구를 수납시킨 점이 재미있다. 라이딩 전이나 중간에 시트포스트와 핸들바, 페달을 조이거나 체결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육각렌치가 포함되어 있고, 바퀴를 고정하는 분리형 레버에도 육각렌치 기능이 있어 편리하다. 크랭크 세트에는 파워미터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요즘은 파워미터를 통해서 수집한 데이터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일이 전보다 쉬워졌다. 파워미터는 훈련을 보다 효율적이고 과학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이기 때문에 유용하지만, 별도로 구매하려면 제법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라이더들의 실력 향상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장비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스램 라이벌 이탭 AXS 구동계는 동호인들이 출전하는 그란폰도와 훈련, 장거리 라이딩용으로 손색없는 성능을 보여준다.
스컬트라 7000은 파워미터가 포함된 무선 변속 그룹셋과 카본 휠셋까지 라이더들이 요구하는 패키지를 충실히 갖춘 매력적인 자전거다. 가격까지 고려한 성능 평가표를 그려보면 원 안을 꽉 채우는 ‘육각형’이 될 것 같다. 이제 상위 모델인 스컬트라 팀의 실력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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