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 한동옥
2002년, 싱글피봇 타입의 다운힐 자전거 수퍼8의 후속 모델로 VPP 서스펜션 시스템을 쓴 10인치 트래블의 다운힐 자전거가 등장했다. 서스펜션 시스템의 이름인 VPP와 10인치 트래블에서 따온 V10이라는 이름의 이 자전거는, 10인치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긴 트래블과 브레이크와 리어쇽간의 다툼을 줄이기 위해 플로팅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을 단 것이 특징이었다. 지금의 V10과는 사뭇 다른 직선 위주의 알루미늄 튜브로 만든 프레임을 썼고, 몇 년 후 2세대로 거듭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V10의 디자인의 기초와 월드컵 레이스 역사가 시작됐다.
월드컵 다운힐 서킷에는 많은 팀들이 참여하며 자신의 선수가 그리고 그들의 자전거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스톱워치와 싸운다. 여러 팀이 창단되었다가 사라지고, 젊은 다운힐 선수가 데뷔 후 어느새 은퇴하는 시간 동안 이름과 기본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월드컵 종합우승과 월드챔피언십을 모두 차지한 바 있는 자전거가 바로 V10이다. 산타크루즈가 만드는 다른 12가지의 자전거들은 모두 V10을 개발하기 위한 비용과 기술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V10은 산타크루즈의 상징이자 집착이고, 신디케이트 팀과 함께 산다. 다운힐 월드컵을 위해 탄생한 자전거, 세대를 거쳐 진화한 V10에는 레이스의 피가 진하게 흐른다.
데뷔한지 어느새 17년, 다운힐 머신 V10은 7번째 버전으로 진화했다. 프레임 소재는 알루미늄에서 시작해서, 메인 프레임만 카본을 적용했다가 지금은 스윙암까지 모두 카본을 쓰고 있고, 바퀴는 26인치에 오래 머물다 4년 전 27.5인치를 달았다. 그리고 최신형은 V10 역사 중 가장 큰 바퀴를 달고 나타났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 29인치 휠이 표준이 된 것과는 달리 다운힐 경기에서는 3가지 타입이 섞여서 경쟁 중이다. 29인치로 휠을 확 키운 팀과 제조사가 있는가하면 27.5인치를 유지하기도 하며, 앞바퀴는 29인치 뒤는 27.5인치를 쓰는 자전거도 있다. 그래서 다운힐 경기에서는 휠 사이즈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월드컵 경기가 치러지고 나면 서킷마다 어떤 휠 사이즈가 더 빨랐는지 분석이 이뤄진다. 코스와 라이더의 신장 그리고 속도유지와 가속구간의 비율에 따라서 어느 휠이 더 빠른지가 달라지는데, 29인치는 분명 노면이 험할수록 그리고 고속구간이 높을수록 빠르다.
29인치는 프레임이 클 수밖에 없어서 걱정이라고? 산타크루즈는 170㎝ 이하의 라이더를 위해 민첩하고 가속이 빠른 27.5인치 버전도 준비했다. 바퀴만 바꿔끼우는 것이 아니라 두 버전의 프레임을 구분해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7세대 V10은 29인치와 27.5인치, 하나의 이름에 두 종류의 V10이 존재하게 된 것. 이 중 29인치 V10을 시승했다.
산타크루즈의 카본 자전거들은 사용한 카본의 등급에 따라서 C와 CC로 구분된다. 프레임의 강성은 같지만 CC 모델은 고가의 카본을 쓴 덕에 무게가 가볍다. 당연히 CC 모델의 가격이 더 비싼데, V10의 경우 7세대 모델에 접어들며 C 모델을 없애고, CC로만 라인업을 구성했다. 29인치 모델에 3개 사이즈(M, L, XL), 27.5인치 역시 3개 사이즈(S, M, L)여서 총 6가지의 금형을 준비해야 하는데, 각 사이즈를 C와 CC로 구분해 만들면 종류가 너무 많아진다. 게다가 산타크루즈의 상징인 V10의 이미지에 무거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는 승부의 세계에서, 산타크루즈는 휠 사이즈에 따라 별개의 설계로 프레임을 만들고 많은 비용을 들여 각각의 몰드를 만드는 등, 하이엔드 브랜드가 취해야 할 자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V10은 세대를 거치면서 더 낮고, 휠베이스가 길어졌으며, 바퀴가 커졌다. 큰 바퀴와 긴 휠베이스 그리고 낮은 무게중심은 높은 속도에서 안정적이고, 거친 노면을 다리미로 다리듯 평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대신 좌우로 굽이치는 짧은 저속 코너에서는 라이더의 실력에 맡겨야 한다.
리어쇽이 고정되는 하단 링크에 달린 칩을 뒤집어 끼우는 방법으로 BB의 높이와 헤드튜브의 각도 그리고 약간의 휠베이스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은 다른 산타크루즈 풀 서스펜션 자전거와 같다. 그런데 신형 V10에는 여기에 한 가지 옵션이 더 추가되었다. 바로 스윙암 길이 조절이다.
BB의 높이 변경(5㎜)은 하단 링크에 달린 칩을 위아래로 돌려 끼우기만 해서 간단하다. 반면 스윙암 길이를 늘이는 작업은 손을 더 필요로 한다. 먼저 뒷바퀴의 브레이크 어댑터를 교체해서 캘리퍼의 위치를 뒤로 밀어내야 하고, 그 다음은 디레일러 행어를 긴 것으로 교체하고, 논 드라이브사이드의 칩을 빼내 긴 것(별매)으로 바꿔달면 된다. 출고 시에는 짧게 설정되어 있고 길게 세팅 시 휠베이스가 10㎜ 늘어나게 된다.
산타크루즈의 사이즈 차트를 보면 신장 170㎝ 이상부터 29인치 버전의 V10을 탈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73㎝ 이하일 경우 27.5인치 버전의 V10을 탈 것을 권하고 있다. 이유는 29인치 버전은 점프나 드롭 이후 최대 트래블이 발생할 때 뒷바퀴가 엉덩이에 닿아 위험할 수 있어서라고. 참고로 27.5인치 버전 V10의 S 사이즈는 신장 155㎝부터 168㎝를 커버한다.
V10은 프레임 셋(570만원)외에 X01과 S 두 가지 사양의 완성차가 있다. X01(1230만원)은 이름 그대로 스램 X01 DH 컴포넌트를 사용한 최고 등급 모델이다. 폭스 49(29인치)와 40(29.7인치) 팩토리 서스펜션 포크를 썼고, 리어쇽 또한 팩토리 등급의 DHX2다. 구동계는 다운힐 레이스에 최적화시킨 7단이며 브레이크는 스램 코드 RSC다. 카본 핸들바와 티타늄 레일 안장 등 경량 부품이 사용되어 무게가 15.78kg(27.5인치)과 16.09kg(29인치)로 가볍다.
시승한 모델은 920만원인 S 사양이다. 타이어와 앞 허브, 림, 스템 등은 상위 모델과 같고, 서스펜션 포크와 리어쇽, 브레이크와 구동부품을 한 등급씩 낮춰 가격을 끌어내린 제품이다.실측 무게는 16.8kg이고, 폭스의 퍼포먼스 엘리트 등급 포크와 리어쇽을 썼다. 스램 GX DH 7단 구동계를 사용하는데, 36T 체인링과 11-25T 카세트스프라켓이 조합된다. DT스위스 350 허브에 레이스페이스 ARC HD 30 림으로 휠을 꾸몄고 맥시스 애서가이 맥스그립 3C 타이어를 앞뒤로 달았다. 타이어의 폭은 29와 27.5 모두 2.5인치로 동일하며, 실런트를 사용하는 튜브리스 레디가 기본 세팅이다.
V10 29의 지오메트리
첫 V10이 등장했을 때가 기억난다. 고등부 선수 시절 싱글 피봇 방식의 다운힐 자전거 산타크루즈 슈퍼8을 타고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는데, V10이라는 이름에 무려 10인치 리어휠 트래블의 어마어마한 모델이 출시된 것이다. 당시 다운힐 자전거의 리어휠 트래블은 8인치가 평균이었고 9인치는 놀랍도록 긴 트래블이었다. 이를 뛰어넘은 V10은 다운힐 라이더를 현혹시키기에 충분했고, 디자인 역시 산타크루즈답게 급진적이었다.
시승을 한 느껴본 신형 29인치 V10의 트래블은 10인치, 254㎜가 아닌 216㎜로 8.5인치 정도 되는데, V10의 바퀴가 커짐에 따라 리어휠 트래블을 줄인 것이다. 리어휠 트래블은 7세대에서 처음 줄어든 것이 아니라 6세대 모델에서 27.5인치 휠셋을 적용했을 때 결정되었다. 트래블이 약간 줄었다고는 하지만 V10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풍성함은 여전하다. 216㎜ 리어휠 트래블은 커진 휠의 적용과 함께 변화한 지오메트리, 프레임의 사이즈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운힐 성능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한 수치라고 생각한다.
시승할 자전거는 타기 전에 외형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V10은 라이더가 필요에 따라 애프터마켓에서 구입해 장착하는 각종 액세서리들이 기본으로 부착되어 있다. 다운튜브 상단과 하단에 각각 설치된 프로텍터는 흙, 자갈뿐만 아니라 트럭 등에 실어 자전거를 이동할 때도 프레임을 보호하고, 리어쇽 뒤쪽에 부착된 작은 머드 플랩은 뒷바퀴를 따라 올라온 진흙을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처음부터 제조사에서 V10에 맞도록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깔끔하다. 왜 산타크루즈가 하이엔드 브랜드인가를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시승 후반에는 비가 제법 내렸는데, 머드플랩이 리어쇽을 제대로 가려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 바퀴를 쓴 자전거인만큼 V10은 이론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에서 예상할 수 있는 약점을 보였다. 바로 저속의 급한 코너에서 둔하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반면에 저속주행이라도 급격한 낙차가 있는 지형이나 돌과 나무뿌리가 선명하게 드러나 시야에 아찔함이 느껴지는 곳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진동 또는 충격이 전달된다. 분명 ‘우당탕탕~’ 지나야 할 곳을 부드럽고 조용하게 넘어간다. 어느새 눈으로 코스를 보고 경직됐던 근육들이 느슨해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행할 수 있게 된다.
저속 코너에서 둔한 모습을 보였던 V10이 자신 있는 영역은 속도가 훨씬 높은 지점이다. 고속으로 코너를 돌고 난 후 페달을 밟아 다시 가속할 때, 그리고 속도를 올릴수록 느껴지는 안정감과 일체감 있는 컨트롤이 29인치 다운힐의 장점이고, 이런 요소들은 기록과 싸우는 월드컵 다운힐 서킷을 달릴 자전거에겐 필수적인 것들이다.
27.5인치 다운힐 자전거들과 이질감이 크지는 않지만, 이 작은 차이로 인해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속도와 속도 대비 컨트롤의 영역이 27.5보다 한 단계 위의 머신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V10은 속도를 다투는 월드컵을 위해 탄생한 모델인만큼 빠르고 스케일이 큰 라이딩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렇게 타야만 하는 태생의 자전거다,
그렇다고 해서 느리고 작은 스케일의 코스에서는 제 성능을 못낸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최적화된 리어휠 트래블 덕에 페달링 성능이 무척이나 좋고, 이전 모델보다 상당히 편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 매뉴얼, 바니홉 같은 기본 테크닉 세트도 무난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올라가면서 타이어의 회전력이 커질수록, 이 기본 테크닉 3종 세트는 라이더의 힘만으로 100% 구사하기보다는 지형지물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아야 느낌이 좋게 구사가 되었다.
국내에서 V10은 물침대 또는 리무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주행이 정숙하고 휠 트래블이 풍성하다는 의미다. 7세대 V10 역시 모든 링크와 카본 프레임이 무척이나 정숙해서, 자전거가 매우 진지하다는 느낌을 준다. 잡소리가 일체 없기 때문에 자연의 소리와 라이딩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라이더의 취향 그리고 코스에 따라 지오메트리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산타크루즈에게 V10이 어떤 의미의 자전거인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코스를 만나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를 추구했다. V10 오너라면 귀찮아하지 말고 지오메트리 변경 옵션을 사용해 보자. BB의 높이를 하이/로우로 변경해가면서 테스트해보고 키가 큰 라이더라면 휠베이스를 연장할 수 있는 드롭아웃 옵션을 구입해 적용해 보는 것도 V10을 타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다운힐 라이더들이 원하는 자전거의 이상형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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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왓 한동옥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