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엘파마가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자사의 엔트리레벨 알루미늄 로드바이크 에포카의 디자인을 바꾼다. 단순히 페인팅이나 그래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의 면면이 완전히 달라진 로드바이크를 내놓은 것이다. 한편, 당시 신형 에포카와 꼭 닮은 카본 로드바이크도 함께 선보인다. 칸타타라는 이름의 이 자전거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레이다(RADAR)의 전신이다.
레이다 시리즈는 과거 엘파마가 카본 로드바이크의 대중화 선언을 한 모델이다. 사진은 본 기사에서 시승한 2016 레이다 R6800.
소재만 다를 뿐 외형과 지오메트리가 동일했던 이 두 자전거의 공통점은 대중화를 위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에포카는 알루미늄 로드바이크로서, 칸타타는 카본 로드바이크에서 엔트리 모델인 셈. 사실 당시의 바뀐 에포카가 칸타타를 닮았다고 해야 했으나, 기존 에포카의 명성이 워낙 높다보니 칸타타는 에포카를 닮은 카본 로드바이크가 되어 버렸다.
레이다라는 이름은 2014년부터 사용했는데, 전작인 칸타타에 비해 프레임 무게를 소폭 줄이고 원활한 변속성을 위해 케이블 루트를 프레임 밖으로 빼낸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에포카 닮은꼴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레이다는 출시되자마자 로드바이크를 시작하려는 사람, 또는 카본 로드바이크로 처음 기종 변경을 꿈꾸는 이들에게 소위 ‘가격 대비 성능’에서 나무랄 데 없는 자전거라는 명성을 얻는다. 당시 레이다 R6800S의 부품을 보면 브레이크와 휠셋을 시마노 BR-561과 RS-11을 사용했을 뿐, 그 외 부품을 고급기종에 사용하는 시마노 울테그라로 채웠다. 그러고도 21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표를 달고 나왔던 것.
번데기에서 나비로
2015년 3세대 모델이 나오면서 외형과 지오메트리가 바뀌었으며, 2016년엔 페인팅과 부품구성이 업그레이드됐다.
2015년, 레이다는 에포카를 빼닮은 기존의 모습을 탈피해 더욱 미려한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용한 카본은 토레이 T700으로 이전과 같으나 지오메트리와 튜빙 형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케이블은 다시 프레임 안을 지나는 인터널 루트로 바뀌었는데 변속성이나 제동감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케이블 루트가 개선됐다.
지오메트리에 있어선 BB중심에서 헤드튜브 상단까지의 높이인 스택을 낮추어 이전보다 공격적인 포지션을 추구했다. 한편, BB중심에서 헤드튜브 중심까지의 수평거리인 리치 또한 줄여 공격적인 자세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한다.
3세대 레이다는 헤드튜브의 길이를 줄이고 스택을 낮추어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추구했다.
2세대 레이다가 곡선형 탑튜브였던 것과 달리 쭉 뻗은 일자형 탑튜브다.
이 과정에서 휠베이스도 사이즈에 따라 4~13㎜ 줄었는데, 앞서 언급한 스택과 함께 BB드롭 또한 소폭 낮추어 더 안정적인 저중심 설계를 했다.
튜빙에도 변화가 컸다. 스택을 낮추면서 헤드튜브를 짧게 설계한 대신 다운튜브와 체인스테이는 전작보다 더욱 오버사이즈가 됐다. 반면, 시트튜브와 시트스테이는 전작과 확연히 차이 날 정도로 가늘고 얇아졌는데, 전자는 조향부와 페달링 강성을 높여 빠른 반응성과 동력전달효율을 끌어내고, 후자는 승차감 또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케이블은 프레임 안을 지나는 인터널 루트를 사용하는데, 케이블이 삽입되는 입구에서 케이블의 굴곡을 최소화해 변속 조작이나 제동을 할 때 원활한 작동성을 확보했다.
얇고 늘씬한 시트스테이는 시트튜브 좌우를 지나쳐 탑튜브와 그대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주행진동을 감쇠하고 프레임의 비틀림 강성을 높일 수 있는 형태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2015년 레이다는 엔트리레벨 바이크 에포카의 물을 쫙 빼고 더 공격적이고 날렵한 모습이 됐는데, 안정적인 주행성과 라이더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편의도 놓치지 않았다.
엘파마 레이다의 지오메트리. 2016년에는 체격이 작은 사람들을 위해 450사이즈가 추가됐다.
2016 더 착해진 레이다
그럼, 2016 레이다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사이즈나 색상 등 소비자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부품은 더 고급스러워졌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가격은 그대로라는 것. 지금부터 그 내용을 요목조목 짚어보자.
레이다 R6800은 크랭크셋과 앞뒤 변속기, 컨트롤레버, 브레이크는 물론 스프라켓과 체인까지 시마노 6800 울테그라 풀셋을 사용한다.
2015 레이다 라인업은 R6800, R6800S, R5800S, R4600 부품등급에 따라 4가지 모델이 있었다. 위 모델명에 붙은 ‘S’는 일부 부품을 다운그레이드하여 가격의 문턱을 낮춘 스페셜 모델이라는 뜻으로 2014년 기획된 것이다. 헌데 엘파마는 이전부터 자사 자전거에 시마노 풀셋을 적용하는 전통(?)이 있었기에 이 다운그레이드 모델은 한시적으로만 판매되고, 해가 바뀌자 사실상 폐지되어 라인업의 모든 모델이 풀셋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2016 레이다는 라인업의 모델명이 다시 정리됐다. 올해부터 레이다의 ‘S’는 하이프로파일 카본 휠셋인 제타를 장착한 최고급 모델 R6800S에만 붙는다. 나머지 R6800, R5800, R4700은 각각 시마노 울테그라, 105, 티아그라 풀셋이 적용된 것은 물론이다.
핸들바와 스템, 시트포스트는 엘파마의 알루미늄 컴포넌트인 EM70 시리즈다.
안장은 셀레이탈리아 넥커 프리플로우이며, 시트포스트 사이즈는 27.2㎜다.
레이다, 초급 딱지를 떼다
이번 시승의 주인공인 2016 레이다 R6800과 바로 아래 등급인 R5800의 부품구성을 잘 살펴보면 종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바로 휠셋이다.
세련된 프레임으로 세대교체를 하고, 시마노의 고급 로드부품인 105와 울테그라 풀셋 사용한 모델이 라인업의 주력인 레이다에 있어 종전 R6800S에 사용한 시마노 WH-RS010 휠셋은 마지막 남은 엔트리레벨 딱지였다.
스트레이트 풀 방식 스포크와 허브를 사용하는 DT스위스의 R522 휠셋을 쓴다. R522 휠셋은 R6800 외에 하위 모델인 R5800에도 적용됐다.
이에 2016 레이다 R6800과 R5800은 DT스위스의 R522로 휠셋을 업그레이드했다. 이 휠셋은 DT 스위스가 자전거 제조사에 공급하는 OEM 제품으로 애프터마켓용 라인업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스플라인 R 시리즈에 속하며, 애프터마켓용 스플라인 휠셋처럼 스포크헤드가 일자형인 스트레이트 풀 방식 허브와 스포크를 사용한다.
DT스위스 스플라인 R 시리즈의 다른 휠셋과 달리 뒷바퀴 허브의 드라이브사이드 플랜지가 오버사이즈다.
같은 시리즈의 다른 휠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뒤 허브의 드라이브사이드 플랜지가 상당히 오버사이즈라는 것. 오버사이즈의 스트레이트 풀 방식 플랜지는 스포크를 비교적 짧게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포크 헤드를 깊게 잡을 수 있어 일반 클래식 타입이나 좌우 플랜지가 비슷한 허브에 비해 동력전달 효율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종전 모델의 휠셋보다 무게면에서는 200g 더 가볍다.
이로써 레이다 시리즈는 프레임의 완성도에서나, 부품구성에서나 에포카 닮은꼴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초급’이라느니 ‘엔트리레벨’ 같은 꼬리표를 완전히 뗐어냈다.
착한 가격 그대로, 다양해진 사이즈와 색상
앞서 언급했다시피 2016 레이다는 사이즈와 색상에서도 변화가 있다. 지난해 발표됐을 당시 레이다는 470, 500, 530, 550까지 4가지 사이즈뿐이었다. 전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가 빠진 것인데 2016년엔 체격이 아주 작은 사람도 선택할 수 있도록 450 사이즈(유효 탑튜브 505㎜)가 추가됐다.
색상도 다양해졌다. 2015 레이다는 유광 블랙/화이트, 무광 블랙/유광 블랙 2가지 무채색만 있었던 반면, 2016 모델은 유광 블랙/레드, 유광 블랙/그린, 무광 블랙/유광 블랙 3가지로 늘여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프레임 말단의 마무리나 전체적인 페인팅 상태가 이전보다 깔끔해지고 말쑥해진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엘파마는 “프레임의 성형에서부터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프레임의 그래픽을 바꾸면서 도색에도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2015년 무채색만 있던 레이다에 유광 블랙/레드, 유광 블랙/그린 색상이 추가됐다. 사진은 유광 블랙/그린.
이번에 시승한 레이다 R6800의 가격은 215만원. 종전 R6800S가 210만원이었으니 소폭 가격이 오른 셈이나, 업그레이드된 휠셋 값이 5만원이라고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지불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105 그룹셋을 사용한 R5800의 경우 휠셋이 업그레이드 됐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에서 단지 1만원 오른 175만원이라니, 두 모델 모두 사실상 가격이 인하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카본 휠 제타를 장착한 최고급 모델 R6800S의 경우엔 324만원이고, 레이다의 막내 R4700은 152만원으로 지난해 동급 모델인 (구)R6800과 R4600에 비해 각각 25만원, 8만원 오히려 저렴해졌다.
난 10대 후반부터 산악자전거를 즐겼고, 요즘도 종종 MTB 대회를 찾곤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업무가 바빠 한동안 자전거를 멀리하다가, 30대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로드바이크를 즐기게 됐다. 이미 스포츠 자전거에 경험이 있고, 학생시절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인지 처음 로드바이크를 구입할 때 난 제법 고급 자전거를 샀다.
엘파마 레이다 R6800을 타고 집에서 멀지 않은 오두재를 올라봤다.
엘파마 레이다의 시승제의를 받고 레이다에 대해 좀 찾아보았더니, ‘가성비 극강’, ‘가격대비 부품구성 좋은’ 이런 말들이 많아서 소위 ‘무늬만 카본’인 엔트리레벨 로드바이크인 줄 알았다. 취재일 시승자전거를 받고 보니 산뜻한 색상에 말끔한 튜빙까지, 아주 예쁘장한 카본 로드바이크다. 시승모델은 레이다 R6800이었는데 부품구성이 시마노 울테그라 풀셋이다. 보이는 외관에 있어서는 어디를 봐도 준수한 카본 로드바이크다.
프레임의 강성, 페달링 반응성 만족
거두절미하고 시승을 해봤다. MCT 같은 레이스에 출전하면서 욕심을 내다보니 난 하이엔드 레이스바이크를 갖고 있다. 레이다를 내 레이스바이크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페달링이 경쾌하고 반응도 제법 빠르다. 시승은 집에서 가까운 오두재 인근을 라이딩했는데, 댄싱으로 오르막을 오를 때, 주행반응이라든지 프레임의 강성이 만족스럽다.
자세에서도 스프린트와 다운힐 같은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어색함이 없다. 취재일은 눈이 온 후 직후라 노면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긴 내리막을 고속으로 다운힐 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 구간에서 제법 빠른 속도를 내보았을 때 조향도 안정적이다. 노면이 불량한 곳은 라이딩하지 않았지만 얇고 긴 시트스테이 때문인지 안장에 앉아 라이딩 할 때 승차감도 좋은 편이다.
페달링이 경쾌하고, 강한 댄싱에도 불협화음을 일으키거나 프레임이 무른 느낌이 없다.
시승을 마친 후, 자전거를 찬찬히 살펴보니, 체인이나 스프라켓까지 모두 울테그라다. 대체로 판매되는 완성차를 보면 눈에 잘 보이는 부품은 통일시키고, 잘 보이지 않는 부품은 등급을 낮추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기에 동호인들 사이에서 ‘(시마노 울테그라를 예로 들어)옆에서 보이는 부품이 울테그라면 울테그라급, 브레이크까지 다 울테그라면 울테그라 풀셋, 그 이상 바라지 말라’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레이다 R6800은 브레이크는 물론 체인과 스프라켓까지 그야말로 속속들이 모두 울테그라 풀셋이다.
내실과 성능으로 봐야
서두에 내가 로드바이크를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고급 자전거를 샀다는 말을 했는데, 속된 말로 ‘한 방에 가라’는 뜻으로 고급 자전거 이야기를 한 게 아니다.
레이다 R6800이 충분히 고급 카본 로드바이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우선 프레임을 놔두고 부품등급으로만 이야기해보자. 시마노를 예로 들어 엔트리레벨의 부품은 클라리스, 중간은 소라와 티아그라, 고급은 105와 울테그라이고, 레이스를 전제로 한 최고급 등급이 듀라-에이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05에서부터 듀라-에이스까지 모든 부품은 혼용할 수 있다.
다운힐이나 스프린트 같은 높은 속도에서도 조향이 안정적이고 주행진동면에서도 합격점이다.
이에 웬만큼 경험 있는 동호인들이 로드바이크를 업그레이드할 때는 프레임을 가장 먼저 살피고, 그 다음 굳이 레이스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부품등급을 울테그라 선에 맞추는 것이다.
레이다 R6800은 프레임의 강성이나 승차감 면에서 뭇 카본 로드바이크에 뒤떨어지는 면이 없다. 그리고 울테그라 풀셋으로 부품도 충분히 고급스럽게 꾸몄다. 지금부터 굳이 트집을 잡으면 더 높은 가격의 레이스 등급 자전거나 경기상황에서의 이점 등을 견주게 되는데, 이는 이미 비교의 기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사용자에 따라 그 이상을 볼 수도
그렇다고 레이다 R6800은 대회나 레이스에 부적합하다는 뜻은 아니다. 레이다 R6800은 주말 친목 라이딩에서부터 장거리 그란폰도까지 로드바이크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스포츠 목적에 다 부합한다. 레이다 R6800을 선택한 사람들 중에 만약 MCT 같은 더 다이내믹한 레이스에 도전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그룹셋보다 레이스를 분석해 상황에 맞는 휠셋을 하나 더 장만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도 욕심이 나면 이후 충분한 예산을 모아 부품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본인의 레이스 스타일에 더 적합한 레이스바이크를 찾으면 된다.
DT스위스의 R522 휠셋은 반응성이나 동력전달면에서 일반적인 엔트리레벨 휠셋의 성능을 상회한다. 레이다 R6800의 구성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다.
휠셋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레이다 R6800의 구성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꼭 짚으라면 휠셋이다. 레이다 R6800에 장착된 DT스위스의 R522 휠셋은 완성차에 장착된 순정 휠(?)치고 반응도 빠르고, 주행감도 싹싹하다.
앞서 “MCT같은 레이스에 출전하고자 하면 휠셋을 하나 더 장만하라”고 한 말을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부연 설명하자면 엘리트 선수나 레이스를 즐기는 동호인들은 평소 쓰는 휠과 레이스용 휠을 따로 쓰는 경우가 많다.
레이다 R6800의 휠셋은 필자가 훈련용 휠로 사용한 평범한 알루미늄 소재의 휠셋보다 그 성능이 높다는 뜻이다. 또한 레이스에 맞는 휠셋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라이더 자신의 레이스 스타일이나 경기코스와 난이도 등에 따라 맞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할 수는 없다.
총평을 하자면 레이다는 불필요한 옵션을 뺀 자동차다. 그렇다고 기본 부품이나 외장에서 떨어지는 부분은 없다. 또한 이 정도 부품구성에 215만원이면 가격적인 면에서도 박수를 칠만 하다. 나머지 이 모델이 스포츠 세단이 될지, 스포츠카가 될지는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엠비에스코프레이션 www.elfama.com ☎(070)4002-3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