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한동옥
디파이는 2014년, 자이언트가 미래의 로드바이크에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표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림 브레이크 옵션 없이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으로 만든 최초의 로드바이크다. 좋은 승차감과 편안한 자세를 통해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인듀어런스 자전거였다. 자이언트는 4년 후, 디파이가 가진 개성을 한층 더 발전시켜서 더 편안하고, 빠르며,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2세대 모델을 선보였다.
2세대 디파이의 최상급 모델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 디파이는 림 브레이크 없이 디스크 브레이크로만 생산된 최초의 로드바이크다.
초대 디파이가 발표될 무렵, 로드 디스크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디스크 브레이크는 위험한 물건이며 로드바이크에는 산악자전거 같은 제동력이 필요치 않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산악자전거에 디스크 브레이크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와 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히 로드 디스크가 대중화될 것이라는 입장이 있었다. 그리고 시마노와 스램 같은 구동계 제조업체에서도 아직 디스크 브레이크를 완전히 라인업에 포함시키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현재, 상황은 급변했다. UCI 월드 투어에서 디스크 브레이크를 단 레이스 자전거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브랜드들은 신형 로드바이크를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디파이는 그만큼 앞선 컨셉을 가진 영리한 로드바이크였다.
앞뒤 160㎜ 로터로 바퀴를 멈춘다.
디파이는 장거리를 편안한 자세와 승차감으로 달릴 수 있는 인듀어런스 자전거다.
2세대 디파이를 내놓으며 자이언트가 앞으로 대중화될 것이라고 예언(?)한 부품이 하나 있다. 바로 파워미터다. 선수 또는 열정적인 동호인들에게만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고가의 파워미터를 현실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훈련과 분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디파이 2세대 최상급 모델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 모델에 자이언트가 직접 개발한 듀얼 사이드 파워미터인 파워프로를 자이언트 자전거 중 처음으로 기본 장착했다. 이후 한 차례 업데이트를 거쳐서 더 소형화된 파워프로가 디파이 뿐 아니라 TCR과 프로펠 그리고 리브(Liv)의 로드바이크에 장착되었고, 울테그라 베이스의 파워프로보다 더욱 대중화를 꾀한 105 베이스의 파워프로로 함께 개발해 완성차에 적용하고 있다.
자이언트는 2세대 디파이를 공개하면서 파워미터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시마노 울테그라 Di2가 쓰인 자전거에는 자이언트의 파워프로 파워미터가 장착되고, 스램의 무선 변속 그룹셋을 쓴 자전거에는 스램의 파워미터가 적용된다.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에는 스램 레드 크랭크암에 체인링 일체형인 쿼크 D제로 파워미터가 장착됐다.
블루투스, ANT+, KC 인증마크 등 크랭크셋에는 익숙하지 않은 로고들이 가득하다.
이번 테스트라이드의 주인공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는 2019년형(525만원)보다 324만원 비싼 849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대단한 가격 인상 같지만, 2020년형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는 같은 이름의 2019년형의 상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라인업에서는 2019년형 어드밴스 프로 0와 같은 시마노 울테그라 Di2와 파워프로 파워미터를 쓴 모델에 어드밴스 프로 1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어드밴스 프로 0는 12단 구동계에 무선 변속 시스템을 사용한 스램 레드 이탭(eTAP) AXS(액세스)를 사용하면서 등급을 올린 것. 기계식 시마노 울테그라 구동계를 사용하는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1는 2020년 새로운 색상의 옷을 입으며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2로 이름이 변경됐다.
무선으로 변속 명령을 내리는 레드 이탭 AXS 컨트롤 레버.
장거리 주행에서 라이더의 피로를 줄여 줄 수 있는 첫 번째 부품은 바로 타이어다. 그래서 자이언트의 엔지니어들은 타이어 사이즈의 결정을 디파이 개발의 첫 단계로 정했다. 그리고 프레임과 포크에 최대 35C까지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두고 28C 타이어를 끼웠다. 널리 쓰이는 25C보다 약간 더 굵은 타이어인데 승차감과 코너링이 좋을뿐더러 속도 저하가 크지 않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와이드 타이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희석되었고, 자신감을 얻은 자이언트는 2020년형 모델에 더욱 굵은 타이어를 쓰기로 한다. 바로 32C 타이어다. 타이어는 사이즈 뿐만 아니라 패턴 또한 변경되었는데, 물길을 잘 가르는 트레드를 지닌 자이언트 가비아 폰도를 썼다.
디파이는 다재다능하다. 포장도로라면 다소 거칠어도 부담 없이 지날 수 있고, 장거리를 달릴 때 라이더의 엉덩이와 손목을 고문하지 않는다.
타이어의 사이즈가 28C에서 32C로 변경되어 한층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갖게 되었다. 타이어 내부의 볼륨이 커진 탓에 사용 공기압은 낮아져서 50~75psi를 사용한다.
자이언트의 대표적인 승차감 개선 기술인 D퓨즈가 적용된 시트포스트. 앞쪽은 둥글고 뒷부분은 알파벳의 D처럼 평평한 모양이다. 노면에서 충격이 전해지면 평평한 쪽으로 움직이면서 불쾌한 진동을 한차례 거른 후 라이더에게 전달한다.
타이어가 먼저 노면의 진동을 정리한 뒤 포크와 프레임에게 남은 몫을 전달하면, 진동감쇠 기술인 D퓨즈(D-Fuse)가 적용된 핸들바와 시트포스트가 한번 더 진동과 충격을 줄여서 라이더에게 전달한다. 두툼한 튜브리스 타이어와 유연한 핸들바와 시트포스트가 적절한 안락함을 제공한다. D퓨즈는 튜브의 모양이 알파벳 D와 비슷한 모양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이클로트로스 자전거인 TCX의 시트포스트에 처음 쓰였고, 이후 디파이에 적용된 2세대 디파이부터는 핸들바에도 확대 적용됐다. 현재 TCX와 디파이, 리볼트, 컨텐드에 D퓨즈 기술이 적용되었다. 이 중 포장도로를 무대로 삼는 자전거는 디파이이고, TCX와 리볼트는 흙먼지가 날리는 곳이 앞마당이다. 컨텐드는 양쪽 모두 발을 담그고 있다.
D퓨즈 시트포스트에 연결되는 자이언트 컨택트 SL 안장.
핸들바도 D퓨즈다. 아래쪽으로 최대 12㎜가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한다. 브레이크 호스가 핸들바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깔끔한 콕핏이 완성되었다.
D퓨즈는 튜브 단면 중 평평한 쪽으로 움직이면서 충격과 진동을 흡수하는데, 시트포스트의 경우 뒤쪽으로, 핸들바는 아래쪽으로 움직이게 설계되었다. 노면이 거친 곳을 지나면서 라이더의 체중이 순간적으로 핸들바 아래로 쏠릴 때, 최대 12㎜가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한다. 12㎜나 움직이는 핸들바라면 스프린트나 댄싱을 할 때 휘청이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자이언트 엔지니어들은 카본의 특성을 살린 설계와 독특한 레이업을 사용해서 아래로는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스프린트하면서 핸들바를 당길 때는 원형 튜브를 쓴 핸들바보다 오히려 30% 강하게 버티도록 만들었다. 힘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게 해서 승차감과 강성을 모두 만족시킨 것.
편안한 승차감을 가진 인듀어런스 자전거여서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디파이는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구동계는 올해 초 공개한 이후 각 브랜드의 상위 모델에 대거 채용되고 있는 스램 레드 이탭 AXS다. 유압식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160㎜ 로터를 쓴다. 이탭 AXS의 무선 전동 변속 시스템은 잘 알려진대로 앞뒤 디레일러에 별도의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되고 좌우 컨트롤레버에는 버튼형 전지가 삽입된다.
스램 12단 체인은 모양이 독특하다.
10-33T 12단 카세트스프라켓.
카세트스프라켓은 스램 레드 12단 중 가장 기어비가 넓은 10-33T(10, 11, 12, 13, 14, 15, 17, 19, 21, 24, 28, 33T)다. 여기에 레드 크랭크셋 중 가장 작은 체인링 조합인 46/33T를 써서 가파른 언덕에서도 가벼운 페달링을 이어갈 수 있다. 이너 체인링(33T)과 가장 큰 스프라켓(33T)를 쓰면 기어비가 1:1이 된다. 체인링에는 쿼크(Quarq) 파워미터가 일체형으로 설치되어 있다. 좌우 파워를 구분해 측정할 수 있으며, 정확도는 ±1.5%다. 자이언트는 작년, 신형 디파이를 공개하면서 직접 개발한 파워미터인 파워프로도 함께 선보였는데, 올해는 파워미터의 적용을 대폭 확대했다. 시마노 그룹셋을 사용한 모델에는 자이언트가 울테그라와 105 크랭크셋을 베이스로 개발한 파워프로를 적용했고, 스램 레드/포스 이탭 AXS 그룹셋을 쓴 모델은 스램 레드/포스 파워미터를 사용했다.
자이언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의 가격은 849만원이고, 사이즈는 XS와 S, M 그리고 ML이 있다. 테스트한 S 사이즈 무게는 7.65㎏(페달 제외)으로 나타났다.
자이언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의 지오메트리
인듀어런스 자전거, 디파이는 올라운드 레이스 모델인 TCR과 유사한 디자인을 써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모습이다. 디스크 브레이크와 튜브리스 휠과 타이어가 기본이어서 최신 자전거의 느낌이 물씬 난다. 여기에 무선 변속 구동계인 스램 레드 이탭 AXS가 파워미터까지 포함된 사양으로 장착되어 있다. 한 마디로, 로드바이크에 넣을 수 있는 최신 기술은 모두 담은 자전거라는 뜻이다.
여유로운 공간을 지닌 포크와 체인스테이는 최대 35C 타이어를 수용할 수 있다. 2019 모델에는 28C를 썼는데, 올해는 사이즈를 더욱 키워서 32C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디파이에 장착된 레드 이탭 AXS는 유압식 디스크브레이크와 10-33T 12단 카세트스프라켓 그리고 46/33T 크랭크셋 사양이다. 마지막에 스프라켓이 급격히 커지는 10-33T 카세트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 ‘한 장만 더’라는 간절한 라이더의 마음에 보답하는 의미가 크다. 33T 체인링과 1:1로 기어비를 맞춰 편안하고 여유롭게 오를 수 있다. 체인링과 스프라켓의 조합은 이 자전거가 빨리 달리는 레이스용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라도 적응해 달릴 수 있는 범용성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디레일러 뒷부분의 검색은 덩어리가 배터리다. 원터치로 분리되며, 전용 충전기에 꼽아 충전한다.
장거리를 달릴 때는 페이스 유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에는 파워미터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서 페이스를 설정해 달리면서 오버페이스를 막을 수 있다. 라이딩 도중 봉크가 나거나 지치지 않고 목적지까지 달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승차감을 개선하는 D퓨즈 기술은 꽤나 재미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시트포스트와 핸들바에 체중을 실어 눌러보면 1㎝ 정도 탄력있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술 사양표에 자랑하는 용도이거나 눈으로 보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주행 시 좋지 않은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과 충격을 걸러서 몸에 오는 피로를 줄이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접지력 좋은 타이어와 강력한 브레이크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D퓨즈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이언트는 카본 휠셋 그리고 튜브리스 타이어의 보급에 앞장 서고 있는데, 디파이도 예외는 아니다. 자사의 SLR-1 디스크 휠셋에 자이언트의 32C 튜브리스 타이어를 써서 좋은 승차감과 뛰어난 코너링 성능을 얻었다. 가벼운 휠셋은 디스크 브레이크 장착으로 인한 무게 증가분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32C, 일반적인 로드바이크에서는 아직 익숙치 않은 높은 숫자다. 그런데 이 굵은 튜브리스 타이어의 실력이 제법이다. 노면이 살짝 고르지 못한 곳을 달릴 때는 긴장과 피로도를 줄여주고, 코너링을 하거나 브레이킹을 할 때는 대단한 접지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25C 타이어보다 더 경쾌한 주행질감을 가져다 주었다.
시트스테이를 낮춰 연결하는 것도 승차감 개선의 한 방법이다.
한강 자전거도로의 일부 구간과 지방도로 등 좋지 못한 노면을 달릴 때의 승차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라이트를 달았다고 하더라도 노면이 100% 확인되지 않는 야간라이딩 시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이틀간 200㎞를 넘게 달렸는데, 비가 많이 오고 난 후 포트홀이 여기저기 생긴 터라 노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지만 디파이가 이를 커버해줬다. 그래서 테스트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딩을 나갈 때마다 디파이에 손이 갔다.
자이언트 컨택트 SL 스템. 핸들바 안으로 숨겨진 브레이크 호스를 프레임으로 통과시키는 일을 하는 동시에 공기역학적인 임무도 맡고 있다.
컨택트 SL 스템용 스페이서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 중인 서준용 선수.
자이언트 가비아 폰도 32C 튜브리스 타이어의 최대 공기압은 75psi다. 처음 라이딩을 시작했을 때는 타이어 안에 실런트를 넣고 튜브리스 세팅을 마친 직후여서 최대 공기압 부근으로 탔고, 이후 조금씩 공기압을 낮춰 가면서 코너링과 브레이킹 성능을 저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적의 승차감을 내는 압력을 찾아갔다. 체중이 67㎏인 내게는 65psi가 적절했다. 이보다 낮으면 승차감은 더 좋아지겠지만 주행 저항과 맞바꾸는 것 같은 기분이고, 반대로 높이면 급격하게 딱딱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디스크브레이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제동력을 여유롭게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스램 레드 캘리퍼와 로터 간의 간섭이 없도록 세팅하는 것이 까다로워서, 살짝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라이딩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에 상관 없이 일관성 있는 제동력을 보여주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디파이는 좋은 승차감과 강력한 제동력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컨트롤 능력을 자랑한다.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는 레이스용 로드바이크에 비해 높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지만, 절대 느리지 않다. 노면에서 오는 진동이 아주 적게 느껴지기 때문에 몸에 쌓이는 피로가 적고, 장거리 라이딩 시 특히 도움이 된다. 하루 이상의 라이딩에 나선다면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테스트 라이드 기간 동안 라이딩 자체를 즐길 수 있었는데, 여럿이 디파이를 함께 타고 주행한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디파이는 웬만한 요철은 무시하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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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왓 한동옥 편집장]